LH 직원들 사전투기 의혹 "광명·시흥 100억대 토지 매입"

입력
2021.03.02 11:49
수정
2021.03.02 15:22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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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민변 2일 조사 결과 발표
10여명 본인·가족 명의 7,000평 매입
매입자금 절반 이상이 금융기관 대출
"공직자윤리법·부패방지법 위반 의심"
LH "자체조사 착수·감사에도 협조할 것"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을 확충하기 위해 광명 시흥을 6번째 3기 신도시로 선정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을 확충하기 위해 광명 시흥을 6번째 3기 신도시로 선정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오후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모습. 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소속 직원 10여명이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발표 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일대에 100억원대 토지를 구입하는 등 '사전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LH 직원들이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 약 7,000평 토지를 사전에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며 "이는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 방지의무 위반 및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참여연대와 민변에 따르면 2018년 4월부터 2020년 6월까지 LH 직원 14명과 이들의 배우자·가족은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 총 10개 필지 2만3,028㎡(약 7,000평)를 100억원가량에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매입 자금 절반이 넘는 약 58억원이 금융기관 대출로 추정됐다. 이들은 심지어 개별적으로 소유권을 취득하기보다 공동으로 소유권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해당 토지를 매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참여연대 측은 이들이 신도시 지정으로 인한 수용보상금이나 대토보상(현금 대신 토지로 보상하는 방식)을 노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참여연대 실행위원인 김남근 변호사는 "농지를 매입하려면 영농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LH 직원이 농사를 병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허위·과장 계획서를 제출한 투기 목적 매입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서성민 변호사는 "만일 1명의 명의자가 일치했다면 동명이인으로도 볼 가능성이 있지만 특정 LH 지역본부 직원들이 특정 토지의 공동소유자로 돼있었다"라며 "자신 명의 또는 배우자, 지인들과 공동으로 유사한 시기에 이 지역 토지를 동시에 매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날 공개된 의혹이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광명·시흥 신도시에서 2018~2020년에 거래된 토지 중 무작위로 선택한 10개 필지의 등기부등본과 LH 직원 명단을 대조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해당 지구뿐 아니라 전체 3기 신도시로 넓혀 공공기관 임직원 및 가족, 국토부 소속 공무원 등을 조사하면 더 많은 사전투기 행위가 적발될 수 있다는 게 참여연대 측 주장이다.

김태근 민변 민생경제위원장은 "익명의 제보를 받아 일부 필지를 조사한 결과가 이 정도인데, 전체로 확대해 조사하면 사례가 훨씬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며 "LH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도시 토지보상 시범사업을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라고 지적했다.

광명 및 시흥 신도시 지구내 LH임직원들의 토지 매입 내역. 참아연대 및 민변 제공

광명 및 시흥 신도시 지구내 LH임직원들의 토지 매입 내역. 참아연대 및 민변 제공


광명·시흥 지역은 정부의 '2.4 주택공급 대책'에 따라 지난달 24일 남양주와 하남 등에 이어 여섯 번째 수도권 3기 신도시로 선정된 곳이다. 경기 일산(6만 9,000가구)보다 큰 3기 신도시 최대 규모로, 광명시 광명동·옥길동과 시흥시 과림동 일대에 총 7만호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 지역은 특히 서울과 맞닿아 있는 도심 경계로 '예정된 명당'으로 손꼽히던 지역이라 논란은 확산될 전망이다. LH 직원들이 신도시 지정 전 관련 정보를 사전에 취득해 이를 이용했다면 부패방지법 위반 가능성이 높은 데다, 국토부와 LH 측의 부실한 관리 감독도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누구보다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LH 임직원들이 신도시 예정지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토지 투기를 하고 있었다는 게 확인됐다"면서 "공공주택사업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내집' 마련에 나선 청년들을 비롯한 국민들의 불신은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민변은 감사원의 철저한 감사와 함께 국토부 및 LH공사 측에 직원들의 신도시 일대 토지 소유 현황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김태근 위원장은 "이런 일이 자본시장에 일어났다면 중대범죄인 내부자 미공개 정보이용로 다뤄지지만 부동산법에는 엄벌 규정이 없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철저한 내부 감사와 입법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H 측은 "기자회견에서 제기된 의혹에 대해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라며 "감사원 등 관계기관 조사가 있을 경우 적극 협조하고, 조사결과 관련 법령 등에 따라 조치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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