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못난 장난'이 이룬 선거 젠더혁명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수재너 솔터(Susanna M. Salter, 1860.3.2~ 1961.3.17)는 투표로 선출된 미국 최초 여성 자치단체장이다. 하지만 그의 우화 같은 시장 선거 출마 경위도 흥미롭다.
1887년 4월 4일 솔터는 캔자스주 섬너카운티 주민 수 500여명의 아르고니아(Argonia) 시장 선거에서 유권자 3분의 2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캔자스 주의회가 중소 도시 백인 여성에 한해 참정권을 부여한 직후였다. 여성들은 1883년 퀘이커 교도들이 중심이 돼 '금주연맹(WCTU)'을 결성, 음주와 남성들의 윤리적 타락을 성토하며 정치·사회적 발언권을 확장했고, 그 성과의 하나가 참정권이었다.
여성들의 드센 간섭을 같잖아 하던 일부 남성이 음모를 꾸몄다. 시장 선거에 여성을 출마시켜 망신을 주자는 거였다. 당시엔 일정 수의 추천만 받으면 당사자 의사와 무관하게 출마가 가능했고, 지역구 여성 중 WCTU의 유일한 간부가 솔터였다.
투표 당일 아침에야 자신이 '출마 당한' 사실을 알게 됐지만, 솔터는 당선된다면 성실히 일하겠다고 선언했다. 후보자가 자신에게 투표하는 건 수치스러운 짓이라 여기던 때였고, 솔터는 백지투표로 자신의 표를 무효화했다. WCTU 회원 및 동조자들이 당연히 그를 지지했고, 마땅한 후보를 내지 못한 지역 공화당도 솔터와의 면담 후 공개지지를 선언했다.
유래 없는 젠더 선거 혁명과 '페티코트 통치(Petticoat Rule, 여성 통치를 가리키는 경멸적 뉘앙스의 당시 용어)' 소식은 미국 전역과 유럽에까지 알려졌다. 솔터가 주재한 첫 회의를 취재한 '뉴욕 선' 기자는 "신임 시장은 (전원 남성인) 회의 참석자들의 부적절한 발언을 여러 차례 저지하는 등 의회주의자로서의 훌륭한 자질을 과시했다"고 썼다.
캔자스농업대(현 캔자스주립대)를 중퇴하고, 전임 부지사의 아들인 동창과 결혼한 솔터는 재임 중 출산을 포함해 9명의 자녀를 두었고, 1년 임기 후 재출마하지는 않았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