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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에서 드러난 일본 로비 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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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그가 한일 과거사 갈등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는 위안부 문제에 극우적 시각을 들이댔을까.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에 대한 배경 지식은 없지만 그가 가진 일본과의 이런저런 연결고리는 의문을 깊게 한다. 사실 위안부 피해자를 계약된 매춘부로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램지어 교수 논문에서, 그 내용보다 불편하게 느껴지는 게 하나 있다. 일본의 힘이 미국에서 역사 왜곡까지 가능케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의심이라면 다행이나 역사 갈등에 미국을 활용해온 일본의 전력을 보면 근거 없는 추론은 아니다.
램지어 교수처럼 한일 갈등 사안에 은근히 편들기 발언을 하는 인사들을 추적해 보면 일본과의 깊은 인연이 발견된다. 데니스 블레어 전 국가안보국장은 2014년 위안부 갈등과 관련, 한국도 베트남에서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이해하기 힘든 물타기 발언을 했을 당시 그는 일본 우익 재단에 영입된 상태였다. 2019년 같은 재단에 합류한 제임스 줌월트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는 지소미아(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를 파기하려던 한국에 미국의 이익에도 피해를 준다는 논리로 비판했다.
램지어 교수의 경우, 일본 전범 기업 미쓰비시가 기부금을 내어 유지되는 ‘미쓰비시 교수’이자, 일본 정부가 출연한 라시셔연구소 소속이다. 일본에서 유년을 보내고 일본 최고훈장 욱일장을 탄 지일파란 사실이 아니더라도 한일 과거사를 중립적으로 다루기 부적절한 경력이다. 이전에도 그는 위안부 문제에 부정적이고 생경한 글들을 일본 극우 언론에 게재해 왔다.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정대협이 한일 화해를 방해하며 북한의 정치적 목표를 개진한다는 식이다.
공공 외교를 앞세운 일본의 미국, 워싱턴 침투는 유별나다. 과거 두 차례 미국이 ‘재팬 패싱’으로 중국에 접근하자 자민당 보수정권은 미일 관계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국무부의 ‘국화클럽’은 조금 희미해졌다지만 미국 내 전문가 그룹인 ‘재팬 핸즈’는 필요할 때면 목소리를 높인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만 해도 허드슨연구소의 일본석좌가 되어 미일동맹을 강조하곤 한다.
일본 돈의 힘을 보여주는 장면 역시 자주 목격된다. "우선 저자들은 이 책의 저술 작업을 지원해 준 사사카와 평화재단에 깊은 감사의 말을 전한다.” 미국의 많은 동아시아 전문가가 저술한 책, 연구서에 등장하는 감사의 글이다. 우익 성향 사사카와 재단 홈페이지에 공개된 작년 운영비 458억원, 기부액과 특정 자산을 합한 1조2,500억원은 그 활약상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숫자다. 세계 주요 기관에서 사사카와 재단의 돈을 쓰지 않은 연구진이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북핵 문제에 의견을 적극 개진하는 맨스필드재단은 일본 정부, 기업 지원 속에 공무원 일본연수 프로그램을 25년째 운영하고 있다. 각계에 포진한 연수생 159명은 백악관, 국무부, 국방부, 재무부 등의 고위 인사로 성장해 지일파로 활약 중이다.
일본이 미국에 장기간 구축한 로비 인프라를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 우려되는 것은 이들이 미국 여론을 일본에 유리하게 이끄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일본 돈의 힘은 감사 인사에 그치지 않고 일본 논리의 대변으로 귀결되기도 한다. 실제로 종종 북핵 문제에선 한국과의 공조를 강조하면서 대북 강경책을 전개하는 일본 입장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는 한국과 관계가 소원해지면 일본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해 과거사, 영유권 문제 등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뜻한다.
그래서 일본 보수정권들은 자학적 역사관 탈피를 위해 한일 과거사를 부정하고 미국을 활용해 역사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램지어 교수의 논문 역시 그 의도를 떠나 일본 우익 언론이 쟁점화한 것만 봐도 그렇게 활용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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