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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사법부 어디로 가는가

입력
2021.02.10 18:00
30면

대법원 진보 강화에 사법개혁은 실종?
법원장 추천제는 인사권 강화로 변질?
대법원장 거짓말로 사법독립마저 퇴색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김명수 대법원장을 규탄하는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한편 이날 김 대법원장은 연가(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2021.2.10/뉴스1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 김명수 대법원장을 규탄하는 근조화환이 놓여 있다. 한편 이날 김 대법원장은 연가(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2021.2.10/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은 사법부 위기 상황을 타개할 적임자라는 타이틀로 깜짝 등장했다. 대법관을 거치지 않은 지방법원장 출신 대법원장을 향한 우려가 상당했지만, 상황이 엄중했던 만큼 기대와 희망도 적지 않았다. 전임자인 양승태 대법원장의 이른바 ‘사법행정권 남용사태’로 어수선한 법원을 추스르는 과제가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6년 임기의 절반을 보낸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대법원장으로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온몸으로 막아내고, 사법부의 독립을 확고히 하는 것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던 취임사는 최근 임성근 판사와의 대화가 공개되면서 그 진의를 의심받고 있다. “독립된 법관이 공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통하여 국민에게 보답하겠다”며 수 차례 강조했던 ‘좋은 재판’은 이른바 ‘웰빙 판사’들의 등장으로 ‘국민이 아닌 판사들을 위한 좋은 재판’이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상고제도 개선이나 판결문 공개 확대 등의 개혁과제는 사실상 실종 상태다.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라는 공약은 진영 강화의 현실로 변질돼 버렸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다섯 차례 대법관 임명 제청권을 행사하고 8명의 대법관을 교체했는데, 이 가운데 5명이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이다. 이로써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특정 그룹 출신들이 김명수 사법부의 대법원을 절반 가량(13명 대법관 가운데 6명) 장악했다. 보수 일색이던 양승태 코트의 불균형을 바로 잡는 측면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념 지형의 좌우가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상황에서 국민은 과연 법원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인사권을 내려놓겠다며 도입한 법원장 추천제는 도리어 대법원장의 인사 입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퇴행하고 있다. 과거 법원장이나 고등부장 등 고위법관 인사에는 임관서열이나 의전서열, 근무평정 등의 일정한 기준을 적용해 인사권자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런데 판사들이 2, 3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인사권자가 최종 낙점하는 제도를 도입하면서 대법원장의 인사 입김은 그만큼 커졌고 정치적 줄세우기만 난무한다는 지적이 많다. 시범 실시 이후 제도에 대한 리뷰 과정도 없이 확대 적용하자 법원 주변에서는 “대법원장이 인사권 행사의 단맛에 취한 것 같다”는 비아냥이 흘러나오는 지경이다.

임성근 판사 탄핵 과정에서는 대법원장 스스로 법원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대화 음성파일이 공개되면서 “탄핵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적 없다”는 대법원장의 공식 입장은 하루만에 거짓말이 됐고, 사법의 품격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화 내용은 더욱 심각하다. “사표 수리, 제출 같은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나로서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한다”는 게 정의의 수호자(Chief Justice)인 대법원장이 할 말인가. 탄핵의 현실성은 부정하면서 “(사표를)그냥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라고 말한 대목과 국회 개원 전이라 탄핵 논의가 본격화하지 않았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정치권과 거래 혹은 커넥션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 중심으로 대법원장 탄핵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거대 여당의 정치 지형상 실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대법원장 자격이 없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장 스스로 물러날 생각도 없는 것 같다. 대법원을 항의 방문한 야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잘 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하는데, 그런 소극적 태도로는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보다 구체적이고 과감한 결단이 없다면 무너진 사법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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