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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불어를 몰랐고, 기장은 그 사실을 알았다

입력
2021.02.1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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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2007년 모리타니항공 여객기 납치사건

2007년 2월 라스팔마스 공항에 착륙한 모리타니항공 보잉 737 피랍 여객기. 로이터 연합뉴스

2007년 2월 라스팔마스 공항에 착륙한 모리타니항공 보잉 737 피랍 여객기. 로이터 연합뉴스


2007년 2월 15일, 승객 71명을 태우고 서아프리카 모리타니 수도 누악쇼트(Nouakchott) 공항을 이륙해 카나리아제도로 향하던 모리타니아항공 보잉737 여객기가 이륙 직후 괴한에게 납치됐다. 범인은 단 한 명, 모하메드 압데라만(Mohamed Abderraman)이라는 32세 모리타니인이었다.

7mm 피스톨 2정으로 콕핏을 장악한 범인은 기내방송으로 그 사실을 승객들에게 통보하고, 객실 뒤쪽에 몰려 앉게 했다. 그리고 당시 만 50세 기장(Ahmedou Mohamed Lemine)에게 프랑스 파리로 항로를 바꾸라고 지시했다. 기장은 연료가 부족해서 우선 급유가 필요하다며 중간 기착지 모로코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 승객의 휴대폰 신고로 항공기 납치 사실을 파악하고 있던 모로코 당국은 착륙을 불허했고, 여객기는 어쩔 수 없이 당초 목적지인 스페인령 카나리아제도 그란카나리아의 라스팔마스(Las Palmas) 공항으로 항로를 틀었다.

범인이 불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기장은 착륙 직전 불어 기내방송으로 부기장 등 나머지 승무원 7명과 승객들에게 자신의 작전을 설명했다. 무척 거칠게 착륙할 것이니 승객들은 안전에 유의하되, 범인이 균형을 잃고 쓰러지면 가능하면 남자 승무원과 승객들이 그를 제압하라는 거였다. 둔탁한 착륙 직후 기장은 급브레이크로 범인을 쓰러뜨렸고 부기장과 승객 5명이 커피메이커의 끓는 물을 퍼부으며 범인을 덮쳤다. 그 와중에 두 발의 총알이 발사됐지만 다행히 맞은 이는 없었고, 범인은 대기 중이던 공안 요원들에게 체포됐다.

범인은 프랑스로 정치적 망명을 위해 비자를 신청했다가 불발되자 범행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오인했던 승객들의 공포, 착륙 충격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승객 약 20명의 가벼운 찰과상과 타박상, 얼마간의 연착이 피해의 전부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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