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외교수장 앞세워 美에 처음 던진 말 “도전 않겠다... 단, 레드라인 넘지 말라”

입력
2021.02.02 15:4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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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츠, 美비영리단체 주최 화상연설서
협력 앞세우면서도 내정간섭 강력 경고
시진핑은 바이든에 축전 열흘 넘게 미뤄

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지난해 8월 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당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회동을 가졌다. 부산=연합뉴스

중국 외교정책을 총괄하는 양제츠 공산당 외교 담당 정치국원이 지난해 8월 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당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회동을 가졌다. 부산=연합뉴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중국 지도부가 미국을 직접 겨냥해 꺼낸 첫마디는 ‘협력’이었다. “미국에 도전할 의사가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홍콩 문제를 비롯해 중국에게 민감한 영토문제에 대해서는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며 강력 경고했다. 미국을 향해 손을 내밀면서도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2주가 다 되도록 축전을 보내지 못하는 중국의 복잡한 속내가 묻어있다.

중국의 외교 사령탑인 양제츠(楊潔?) 정치국원은 2일 미국의 비영리단체 미중관계전국위원회(NCUSCR)이 주최한 웨비나(웹+세미나)에 화상으로 참석해 ‘미중 관계의 현주소와 미래’를 주제로 약 27분간 연설을 했다.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미국 청중을 대상으로 중국 고위급 인사가 직접 메시지를 던진 것은 처음이다.

양 정치국원은 먼저 협력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중요한 시기를 맞은 중국과 미국은 이견을 통제하고 공동 이익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중미간 교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과 보다 긴밀하게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조정과 협력을 할 준비가 돼 있다"며 "중국은 미국과 함께 세계 공중보건 시스템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관련 협력을 제안했다.

지난해 6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트위터에 올린 글과 사진. 하와이에서 양제츠 정치국원과 만나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 이행을 거듭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트위터에 올린 글과 사진. 하와이에서 양제츠 정치국원과 만나 미중 무역협상 1단계 합의 이행을 거듭 약속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양 정치국원은 ‘전략적 인내’를 비롯한 바이든 정부의 강경 대중 정책을 의식한 듯 “중국은 미국의 국제적 지위에 도전하거나 대체할 의사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미국이 제로섬 게임의 강대국간 경쟁이라는 구시대적 사고를 뛰어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군, 사이버 안보, 마약 퇴치, 대테러, 빈곤 퇴치 등 협력과 교류수준을 높일 다양한 분야를 거론하면서 “중국은 미국 기업의 투자를 항상 환영한다"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 작용을 방해하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다만 중국을 향해 강경 일변도로 몰아붙인 전임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대해서는 불편한 감정을 쏟아냈다. 양 정치국원은 “중미관계는 양국 수교 이후 전에 없이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면서 "미국의 일부 인사는 냉전적 사고를 갖고 중국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이들은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고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잘못된 언행을 했다"며 "중미간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을 방해하고, 양국간 '디커플링'을 넘어 신냉전을 일으키려 시도했다"고 비난했다. 상호의존을 끊는다는 의미의 디커플링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중국을 압박할 때 즐겨 쓰던 용어다.

양 정치국원은 여전히 미국이 공격용 소재로 활용하는 민감 현안을 언급하며 바이든 정부를 동시에 겨냥했다. 그는 홍콩과 신장, 티베트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미국이 레드라인을 침범하면 양국의 이해관계를 훼손할 것"이라며 "미국은 중국의 영토보전과 주권에 대한 간섭을 중단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이어 "미국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엄격히 준수하기를 기대한다"면서 "중국은 선거를 포함한 미국 내정에 결코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정치국원은 2001~2005년 주미 중국대사를 지냈다. 지난해 6월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과 하와이에서 7시간 동안 회동을 갖고 관계 개선의 불씨를 살리려 했지만 무산됐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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