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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무죄에... 전문가들 "과학적 방법론에 무지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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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 참사'에 연루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직 임원들이 1심 재판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은 가운데, 학계 전문가들이 "재판부가 과학적 방법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학물질 참사를 일으킨 기업에 면죄부를 줬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국환경보건학회는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판결은 과학적 방법론을 재판부가 이해하지 못한 데에 따른 결과"라며 "화학물질 참사를 일으킨 기업에 면죄부를 줘 향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도 무죄를 받을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학회는 "가습기살균제 사용자 중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 함유 제품을 사용한 피해자가 있고, 이들이 다른 원인으로 치명적 건강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항소심에서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결이 다시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유영근)는 지난 12일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등 관계자 13명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현재로선 CMIT·MIT 성분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과 달리 인과관계가 확인 내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해물질과 피해 현상간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전문가들의 증언과 기존 연구를 정리한 환경부 종합보고서 등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의 추정이나 의견, 편향이 들어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법원 판단에 대해 증언에 나섰던 연구자들은 "증언이 원래 취지와 다르게 인용됐고, 연구결과가 선별적으로 선택됐다"는 입장을 내놨다. 동물실험 결과와 피해자 진술 등 다양한 자료가 증거로 제출됐지만, 재판부가 과학적 방법으로 풀어야 할 사건을 지나치게 형사적 방법으로 풀었다는 비판이다. 과학적 연구에선 100% 단정하지 않는데다, 측정 오류 등 다양한 변수가 존재함에도 '명확한 인과관계'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규홍 한국화학연구원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 박사는 "심문 자체가 해당 연구결과에 한정해서 인과관계가 성립하는가 물었고, '해당 연구 결과만으론 관련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취지로 얘기했다"며 "특정 실험결과 하나로 한정해 분명한 인과성을 주장할 수 있느냐고 심문하고, 이를 단정적으로 증언하지 못한다고 해서 판단에서 배제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을 올바르게 이해한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이규홍 박사는 "과학자들은 통상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면서 "가설은 그것이 깨질 때까지는 정설로 받아들여지며 항상 그 가설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도 "재판부가 '전문가들끼리 입을 맞추지 말라'고 주의를 줬는데, 통상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종합하는 것이 통상적인 과학자들의 일하는 방식"이라며 "재판의 방식과 학술적 논의 방식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서 판결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향후 2심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전날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박태현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사건은 과학에 의지해 인과관계를 확인했고 기소와 재판이 이뤄진 전례없는 재판이었다"며 "2심에선 과학자 자문 패널을 구성하고 과학적 연구결과에 대해 다시 판단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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