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죄로 바꿨다가 무죄 나올 수도" 정인이 사건 검찰 전략은

입력
2021.01.07 16:00
수정
2021.01.0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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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정인이 사건' 재판 전망]
수사팀 "사인 재감정 회신 후 공소장 변경 검토"?
일선 검사들 "무리한 법 적용보단 공소유지 중요"
'국민 법감정'과는 괴리... 살인죄 병기 방안 가능

6일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마련된 정인(가명)양의 묘지에 추모 액자가 놓여 있다. 뉴스1

6일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마련된 정인(가명)양의 묘지에 추모 액자가 놓여 있다. 뉴스1

‘정인이 사건(입양아 학대 사망사건)’의 피고인인 양모에게 살인죄가 아니라, 아동학대처벌법상 아동학대치사 혐의가 적용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16개월 입양아의 몸에 강한 충격을 가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양모를 살인죄로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13일부터 이 사건 재판에 돌입하는 검찰도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다. ‘국민 법감정’을 명분으로 이미 기소한 사건의 혐의 적용을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데다, 양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는 걸 입증하는 일은 더욱 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검찰은 재판을 앞두고 어떤 전략을 고심하고 있을까.

①살인죄로 공소장 변경

정인이 양모 장모(34)씨의 혐의를 아동학대치사죄에서 살인죄로 바꾸는 게 불가능하진 않다. 검찰이 ‘공소장 변경’이라는 결단만 내리면 된다. 현행법상 법원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적용 법조를 추가ㆍ철회하거나 변경하는 걸 허용해 주고 있다. 검찰은 전문 부검의 3명에게 정인이의 사인 재감정을 의뢰한 상태인데, 감정 결과를 받아본 뒤 공소장 변경 여부를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살인죄 적용을 위해선 장씨가 살인의 ‘고의’를 갖고 있다는 걸 입증하는 숙제를 먼저 풀어야 한다. 공소장에는 장씨가 ‘불상의 방법’으로 정인이의 등 부위에 충격을 가했고, 그 결과 췌장 절단 등으로 정인이가 숨졌다고만 적시돼 있다. 따라서 충격을 가한 행위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 밝혀내야 살인의 의도가 있었는지도 가늠해 볼 수 있다. 피해자가 성인인 살인 사건의 경우, 통상 △흉기 사용 여부 △치명적 부위 공격 여부 등 범행의 구체적 수법을 살펴본 뒤 고의 여부를 판단한다.

다만, 검찰이 사인 재감정 결과만을 토대로 공소장을 변경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아동학대 사건 수사 경험이 많은 한 부장검사는 “현재까지 드러난 사인에 오류가 있어서 재감정이 필요한 사례로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서중석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도 “정인이에게 가해진 충격이 어떤 형태였는지 입증하는 것은 법의학이 아닌 수사로 해결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계모가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칠곡 계모 사건'의 1심 선고 공판이 있었던 2014년 4월 11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구 수성구 대구지법 앞에서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고 잇다. 대구=뉴시스

계모가 의붓딸을 때려 숨지게 한 '칠곡 계모 사건'의 1심 선고 공판이 있었던 2014년 4월 11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구 수성구 대구지법 앞에서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고 잇다. 대구=뉴시스


②아동학대치사죄로 공소유지

공소장 변경보다는 기존 아동학대치사죄 적용을 그대로 이어가되, 치밀한 공소유지를 통해 중형 선고를 이끌어내는 방법도 있다. 15개월 영아를 굶기고 폭행한 ‘강서 위탁모 사건’의 경우,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위탁모는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의 중형이 확정됐다. 또, 2014년 발생한 ‘칠곡 계모 사건’도 8세 의붓딸의 배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계모가 상해치사죄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징역 15년의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검찰은 ‘계모를 살인죄로 처벌하라’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항소심에서 공소장 변경 방안을 검토했으나, 자칫 무죄가 선고될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해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유사한 사건을 많이 다뤄 본 일선 검사들은 ‘무리한 법 적용보다 공소유지가 확실한 방향으로 기소하고, 중형 선고에 주력하는 편이 낫다’는 견해를 보인다. 수도권 검찰청에 근무 중인 한 부장검사는 “살인이 아닌 치사사건이라 해도 폭력행위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 사망이라는 결과의 예견 여부 등이 치밀하게 입증돼야 한다”며 “검찰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혐의를 적극 부정하는 상황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법무법인 숭인의 김영미 변호사는 “아동학대치사죄 자체가 살인죄 입증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신설됐기 때문에, 양형 단계에서 이런 점이 충분히 고려되면 문제가 없다”면서도 “원활한 공소유지만을 위한 혐의 적용이 국민의 법감정과 괴리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14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앞에 정인양을 추모하는 근조화한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14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검 앞에 정인양을 추모하는 근조화한들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③살인죄와 아동학대치사죄 모두 적용

공소장을 변경하되, 살인죄와 아동학대치사죄를 병기하는 방안도 가능하다. 선(先)순위로 판단을 받고자 하는 범죄 혐의를 주위적 공소사실, 후(後)순위는 예비적 공소사실로 기재하는 방법이다. 일종의 절충안인 셈이다.

일반적으로는 형량이 무거운 범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기재하고, 무죄 선고를 대비해 예비적 공소사실을 추가한다. 만약 검찰이 장씨에게 살인죄와 아동학대치사죄를 동시 적용하면, 법원으로선 사실상 두 가지 혐의의 성립 여부를 모두 따져봐야 한다. 검찰의 한 간부는 “정인이 사건 수사팀이 아동학대치사 혐의를 입증하기가 더 확실하다고 판단할 경우, 살인죄가 아닌 아동학대치사죄를 주위적 공소사실로 기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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