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양부모, 5일 상담 끝에 "적합" 입양절차도 허술

입력
2021.01.07 00:0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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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주도 방식 수 차례 문제점 지적
"입양 많이 보낼수록 기관에 유리"
전문가들 "입양은 공공이 책임져야"
홀트 "입양·사후 관리 강화" 사과

6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지에 사진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6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에 안장된 정인 양의 묘지에 사진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정인이 양부모가 입양 준비기간 중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홀트)로부터 상담 및 조사를 받은 날이 총 9일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민간기관 중심의 입양제도 허점이 속속 드러나면서 입양제도의 공공성 확보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2018년 6월 15일 홀트를 찾아 입양 관련 정보상담을 한 정인이 양부모는 같은 해 7월 3일 홀트에 입양을 신청했다. 그로부터 1년 정도 뒤인 2019년 6월 13일 예비 입양부모교육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입양 자격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같은 해 7월 4일부터 정인이 양모와 양부는 5일간 각각 상담을 받았고, 같은 달 12일과 19일 이틀에 걸쳐 재산과 직업 등을 검토하는 가정 조사를 받았다. 조사가 완료됐다는 의미로 가정조사서를 발급 받은 건 사흘 뒤인 22일이다. 즉 양부모는 1년 동안 단 9일을 투자해 입양 자격증이나 마찬가지인 '가정조사서'를 발급 받아 정인이를 입양할 수 있었다.

정인이 부모의 입양과정. 이대훈 기자

정인이 부모의 입양과정. 이대훈 기자


민간 주도 입양 수 차례 문제 지적

홀트아동복지회 홈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는 입양 절차. 홀트아동복지회 홈페이지 캡처

홀트아동복지회 홈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는 입양 절차. 홀트아동복지회 홈페이지 캡처

이런 입양과정은 정인이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현행 입양특례법에 따라 입양을 원하는 예비 양부모들은 범죄경력조회서 등 기본 서류를 민간 입양기관에 제출하고 이곳에서 가정조사와 예비 입양부모 교육까지 이수해야 아이를 만날 수 있다. 이후 가정법원이 별도로 가정조사를 시행하는 보완책이 마련돼 있지만, 부모를 잘못 만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실제로 2014년 양모가 입양신청 과정에서 부동산임대계약서와 재직증명서 등을 위조해 제출한 적이 있었다. 가정법원에서조차 이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고, 25개월 된 아이는 결국 양모에게 맞아 숨졌다. 2016년에도 입양 전 위탁단계에 있던 3세 여아가 양부모 학대로 뇌사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도, 법원이 이를 모르고 입양을 허가한 적이 있었다.

안타까운 사고가 잇따르면서, 국회에선 입양제도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할 것을 촉구했지만 지금까지 바뀐 건 없다. 2018년 12월 남인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입양특례법 전부개정법률안'에는 입양절차 전반에 국가 및 지자체의 관여와 책임을 강화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해당 법률안에는 입양신청을 입양기관이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하고, 장관 주도로 예비 양부모를 조사하는 등 결연 절차에 공공성을 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돼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을 포함해, 입양에 공공성을 더하는 내용의 입양특례법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 3번 등장했지만 모두 국회를 떠돌아다니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공공 주도 입양제도 필요하다"

6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이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6일 경기 양평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지를 찾은 추모객들이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을 추모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제2의 정인이 사건'을 막으려면 민간이 아니라 정부와 지자체가 입양 주체가 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 입양기관은 아이를 많이 입양 보낼수록 기관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유·불리에서 자유로운 공공기관이 입양 주체가 되는 게 바람직하다"며 "입양신청 단계부터 공공이 주체가 돼 절차를 준수하고, 법원에선 인가만 하는 것이 선진국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아동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아동권리보장원 역시 "복지부와의 협의를 통해 입양의 공적 영역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적 감독위원회에 민간 위원들을 투입해 전문성을 더하는 건 좋지만, 결국 최종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김진섭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입양 교육 자체가 수일이 아닌 단 하루 만에 끝난다는 것부터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라며 "공공의 책임이 흐려지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신현영 의원도 "입양 체계 개선을 위해선 결연 과정부터 사후관리까지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학대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홀트는 이날 정인이 사건이 불거진 후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홀트는 사과문을 통해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앞으로 입양진행 및 사후관리 강화를 위한 법과 제도, 정책적 측면에서 입양기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을 다각도로 검토해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오지혜 기자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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