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변호사회 "정인이 양부모 살인 혐의 적용돼야"

입력
2021.01.05 11:30
수정
2021.01.05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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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진 변호사 "미필적 고의 충분히 있는 사안"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양이 안치된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부모와 함께 묘역을 찾은 한 어린이가 정인양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양이 안치된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부모와 함께 묘역을 찾은 한 어린이가 정인양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여성변호사회가 4일 '16개월 입양아 정인양 학대 사망사건'의 가해 부모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여성변호사회의 인권이사를 맡은 서혜진 변호사는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 보도된 내용으로 나오는 것만 보더라도 충분히 살인죄로 처벌 가능한 사안"이라며 성명을 낸 이유를 밝혔다.

서 변호사는 "이 사안에서 핵심은 살인에 고의를 인정할 수 있을까인데, 의도적으로 죽일 마음을 가지고 행위를 한 것(확정적인 고의)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이런 행위를 하면 아이가 죽을 수가 있겠다는 미필적 고의는 충분히 있는 사안이라고 보여진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가 근거로 제시한 것은 언론 보도 가운데 '아이의 췌장이 절단됐다'는 보도다. "췌장이라는 것은 가장 인간의 신체의 안쪽에 자리하는 장기다. 그 췌장이 절단되고 파열되는 상황에 이르려면 보통의 힘을 가지고는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것"이라며 "대법원 판례를 보더라도 췌장이 파열된 경우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 살인죄로 처벌한 사례가 3, 4건 확인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인이 췌장 절단된 사례도 살인으로 보고 있는데 어리고 또 말도 못 하고 제대로 자기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16개월의 어린 아이를 상대로 한 이런 폭행이 살인죄가 아니라면 이걸 단순히 과실범의 문제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인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검찰, 부검 재감정 의뢰 진작에 했어야"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양을 학대해 사망하게 만든 혐의를 받는 양모 A씨가 지난해 11월 19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 송치를 위해 호송되고 있다. 뉴스1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양을 학대해 사망하게 만든 혐의를 받는 양모 A씨가 지난해 11월 19일 오전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 송치를 위해 호송되고 있다. 뉴스1


정인양 학대 사망사건은 2020년 2월 정인양을 입양한 부모가 아동에게 상습적인 폭행과 학대를 가한 끝에 그해 10월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8일 정인양의 양모를 아동학대치사, 양부를 방임 혐의 등으로 기소했다.

하지만 청와대 국민청원에 두 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오는 등 사건에 대한 공분이 커졌다. 서혜진 변호사는 "살인과 아동학대치사 사이에 법에서 정한 형량의 차이는 크지 않지만, 실제 양형에선 큰 차이가 있다"며 "(아동학대치사가) 실제로는 두 배 이상 가볍게 처벌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검찰도 공소장 변경을 위한 재검토를 시작했다. 전문 부검의 3명에게 정인양 사망 사건의 재감정을 의뢰한 것이 한 예다.

서 변호사는 "검찰이 기소 전에 고민하다가 안전한 방식으로 재판을 받자 싶어서 아동학대치사로 기소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기소 전에 일찍 했었어야 하는 작업이다. 부검의의 감정 결과 사망과 학대 행위의 연관 관계가 소명된다면 검찰 입장에선 공소장 변경에 부담을 더는 것"이라고 봤다.



"경찰, 주변이 신고 다 했는데... 부실 변명 어렵다"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주최로 진행된 '16개월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 관련 항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망 아동을 키웠던 위탁모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1월 16일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주최로 진행된 '16개월 입양 아동 학대 사망 사건 관련 항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망 아동을 키웠던 위탁모가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여론은 여러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에도 미온적으로 대응한 경찰도 비판하고 있다.

서혜진 변호사는 경찰의 어려움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인이처럼 자기 의사 표현을 못 하는 어린 아이가 피해 아동일 경우에는 강제력을 동원해서 분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학대에 대해서는 경찰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공권력 행사의 근거 자체도 미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어 "이 사건의 경우 의사, 어린이집 교사, 주변 이웃이 총 세 차례 신고했다는 것은 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실 신고를 한 것"이라며 "경찰이 2건은 내사종결, 한 건은 혐의 없음으로 검찰 송치한 것은 결과만 놓고 보더라도 절대로 어떠한 해명이든지 변명이 통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아동학대 컨트롤타워인 학대예방경찰관(APO)이 정인양 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세 차례 신고를 신중한 검토 없이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내 다른 수사팀에 맡기면서 학대 징후를 파악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본보 1월 5일자 보도). 서울경찰청은 1~3차 신고 담당자 중 3차 신고 사건을 처리한 경찰관 3명과 APO 2명 등 5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서혜진 변호사는 국회를 향해서도 "아동학대 관련 상당히 많은 법안들이 90건이나 계류 중인데, 개정의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지만 정작 통과되진 않았다는 것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변호사회는 전날 성명에서 지방자치단체에 배치된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늘리고 예산을 지원해 조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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