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신고 의사 "15개월된 아이가 체념한 듯 축 늘어져"

입력
2021.01.0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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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아동학대구나"
"신고 세 번 들어간 것만으로 조치 취해졌어야"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선물과 추모 메시지가 적혀 있다. 양평=뉴시스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추모객들이 놓은 선물과 추모 메시지가 적혀 있다. 양평=뉴시스

입양 후 양부모에게 학대를 당하다 16개월의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을까. 사망하기 20일 전 정인이를 본 뒤 세 번째로 아동학대 신고를 했던 한 소아과 전문의는 "15개월 된 아이가 체념한 듯한 표정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고 아픈 기억을 회상했다.

익명을 요구한 이 소아과 전문의는 5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지난해 9월 어린이집 원장님이 데리고 온 정인이는 두 달 전 봤을 때보다 영양상태와 전신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며 "원장님 품에 안긴 정인이는 (몸이) 축 늘어져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어린이집 원장은 지난해 5월 1차로 아동학대 신고를 했다. 전문의는 "여러 정황들이 있었던 차에 두 달 만에 정인이를 보니까 마치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심각한 아동학대구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며 "그래서 신고하게 됐다"고 3차 아동학대 신고 경위를 밝혔다.

당시 정인이의 모습은 15개월 된 아이같지 않았다고 한다. 전문의는 "15개월 아기한테 맞을지 모르겠지만 너무 체념한 듯한 표정이었다"며 "오랫동안 아이들을 많이 봐 온 경험으로 비춰봤을 때, 어른들로 치면 자포자기랄까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원장님은 당시 정인이를 한 두 달 만에 보신거라고 했다"면서 "15개월짜리 아기들이 가만히 안 있는데, 축 늘어져서 걷지고 못하고 영양상태는 너무 불량하고, 그런 것들이 너무 이상해서 병원에 데리고 오셨던 것"이라고 말했다.


양부모도 병원에 정인이 데려와 진료

지난해 11월 생후 16개월 입양아를 학대해 사망하게 만든 혐의를 받는 양모 A씨가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 송치를 위해 호송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1월 생후 16개월 입양아를 학대해 사망하게 만든 혐의를 받는 양모 A씨가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검찰 송치를 위해 호송되고 있다. 뉴스1

정인이의 양부모도 이곳 소아과 병원을 방문해 정인이를 진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문의에 따르면 지난해 6월께 양부가 정인이의 왼쪽 쇄골 부위가 부어 있는 것 때문에 병원을 찾았고, 전문의는 쇄골 골절이 의심되니 X-레이를 찍어서 확인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7월께도 양모가 예방 접종하러 정인이와 병원을 찾았다. 이 전문의는 접종 전 진찰하다 구강 내 큰 상처를 발견했고, 양모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그동안 먹는데 문제가 없는지 물었다. 그러나 양모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는 것. 전문의는 "혹시 모르니까 어린이집에서 다치진 않았는지 확인해보라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그러던 차에 두 달 만인 9월 23일 정인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원장님이 정인이를 병원에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전문의는 "당시 원장님이 오랜만에 등원한 정인이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인다고 하셨다"며 "진찰 소견상 어떤 급성질환으로 인한 일시적 늘어짐이 아닌 걸로 판단됐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사실일 가능성 1%에 더 무게 둬야"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활짝 웃고 있는 정인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양평=뉴시스

5일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안치된 故 정인 양의 묘지에 활짝 웃고 있는 정인 양의 그림이 놓여 있다. 양평=뉴시스

이 전문의는 당시 신고를 하고 1시간 이내에 경찰이 병원을 방문했다고 기억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4, 5명의 경찰이 방문해 정인이 진료 내용 등을 들었고, 아동보호기관 담당자들과 정인이 양부모를 만나러 가겠다고 했다는 것.

하지만 그 뒤의 상황은 전해듣지 못했다고 전문의는 전했다. 그는 "원래 연락을 저한테 꼭 줘야하는 의무사항은 없기 때문에 연락이 없었고, 어떤 조치가 취해졌으리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의는 정인이의 죽음에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인이 사건의 경우 세 번이나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조사 과정에서 법적인 뚜렷한 물증이 없었다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아동학대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99%라고 해도 사실일 가능성 1%에 더 무게를 두고 접근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그런 이유로 아동학대는 의심만 들어도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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