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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푸어와 벼락거지

입력
2021.01.05 04:30
26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10년 전이니까 그렇게 오래되지도 않았다. '집 있는 거지'라는 뜻의 '하우스 푸어'가 신문 지면에 매일 오르락내리락 하던 게 말이다.

당시 언론들은 무리하게 대출을 해서 집을 샀다가, 집값 하락에 고전하는 직장인 김모, 이모, 박모 씨 얘기를 비중있게 다뤘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지만 주택 대출금 이자를 갚느라 외식도 못 하고 아이들 학원도 못 보낸다는 당시 세태는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하우스 푸어는 '영끌족', '벼락거지' 등에 밀려 지면에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대출해서 집을 사기만 하면 몇 달 새 집값이 수억원씩 오르는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다.

부모한테 물려받은 돈이 없어, 또는 금융권 대출 문이 막혀 집을 사지 못한 김모, 이모, 박모 씨는 이번엔 벼락거지로 뉴스 단골 소재가 되며 하우스푸어 못지않게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벼락거지는 올해도 계속 양산될까. 이 문제를 놓고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차가 감지된다. 각자 나름의 이유와 근거도 명확하다.

집값 상승론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주택 공급부족, 저금리로 인한 풍부한 유동성 등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다. 반면 하락론자들은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등으로 투기 수요가 급감하고 이에 따른 매물이 급증할 것을 그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

어떤 요인에 가중치를 더 놓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 상승론·하락론 다 일리가 있는 얘기다. 지난해 집값 폭등을 정확히 예견할 수 없었던 것처럼 올해 집값이 어떻게 될지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명확한 것은 한 가지 있다. 주택 등 자산 가격은 사이클을 그리며 상승·하락(업다운)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우상향 하기 때문에 업다운 사이클이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게 진실이라면 당장 오늘이라도 집을 사는 게 이득이기는 하다. 하지만 집값 하락기를 버틸 수 없다면 장기 우상향이라는 조건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10년 전 하우스푸어는 바로 그 하락기를 버틸 수 없었던 우리네 이웃들이었다.

집값 하락론을 주장하고 싶은 게 아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의 돈 풀기, 또 제로수준의 저금리와 이로인한 역대급 유동성을 불변의 상수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지금 영끌해서 겨우 이자를 내고 있는데, 코로나19사태 종료와 금리 인상이 연이어 이뤄진다면 영끌족은 언제 또 하우스 푸어가 될지 모른다.

금리가 당분간 쉽게 오르기 어렵다는 반론이 나올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아무도 예견 못했듯, 경제에 미칠 변수를 우리가 모두 예상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지금과 같은 실물경기와 자산시장의 괴리가 지속되면, 1930년대 미국식 경제 대공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당시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은 대폭락했다. 반대로 경기가 급격히 회복되면 풀린 돈의 위력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너무 극단적인 시나리오인가. 1년 전 이맘때만 해도 전세계 여객기 운행이 90% 이상 줄어들 것이라는 '극단'의 상황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민재용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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