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면 그만”이라는 애플의 갑질

입력
2020.12.25 04:30
22면

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애플은 매년 국내에서만 최소 2조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 애플의 직영 서비스센터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애플스토어’(사진) 1곳 뿐이다. 연합뉴스

애플은 매년 국내에서만 최소 2조원대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내에 애플의 직영 서비스센터는 서울 강남에 위치한 ‘애플스토어’(사진) 1곳 뿐이다. 연합뉴스

“사무실 출입문 디자인까지 지적을 해댔으니, 말 다 했죠.”

사실상 강요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니라고 했다. 간섭을 넘어 통제에 가까웠다는 건 이미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스마트폰 유통업계 관계자가 귀띔한 애플의 횡포다. 글로벌 히트상품인 ‘아이폰’을 앞세운 애플이 국내 이동통신업계에 주문한 가이드라인이다. 심지어 최근 들어선 이동통신업체내 단말기 유통팀의 사무실 자리배치까지 직접 관여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납품사가 자사 제품 콘셉트와 결이 다르다는 이유로 유통업체 매장 인테리어까지 사사건건 “감 놔라 배 놔라”하면서 윽박지른 꼴이다. 유통매장내 아이폰의 홍보 포스터 부착 위치조차 애플의 결정 사항이다.

애플에도 믿는 구석은 있다. 출시 때마다 줄을 서는 아이폰 ‘충성고객’이 든든한 지원군이다. 외신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출시된 ‘아이폰12’ 시리즈를 포함해 전체 신·구형 아이폰 생산 물량은 교체수요와 맞물려 내년 한 해에만 2억3,000만대로 점쳐진다. 역대 최대치다. 국내에서 또한 아이폰12는 흥행몰이를 이어가고 있다. 애플이 신제품 공급시, 유통업계와 마주한 협상 테이블에서 언제나 제왕적 주도권을 거머쥘 수 있는 배경이다. 애플에 밉보일 경우엔 신제품 공급 물량이나 시점 등에서 불이익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게 국내 이동통신업계의 처지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폰 충성고객 역시 애플에 홀대받기는 마찬가지다. 신제품 출시 때마다 각종 품질 결함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애프터서비스(AS)에선 폐쇄적이다. 올해 출시된 일부 아이폰12에서조차 잠금 해제시 불안정한 터치 인식이나 디스플레이 색상 변조 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구형 제품에서도 이상 징후는 감지된다. 운영체제(OS)인 iOS 업데이트 이후엔 아이폰XS나 아이폰7, 아이폰6S 등에서 배터리 충전시간 지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누리꾼들의 잇따른 지적이다. 이에 반해 현재 애플의 국내 직영 서비스센터는 서울 강남의 애플스토어가 유일하다. 외부업체와 제휴한 위탁 형태의 서비스센터를 포함해도 애플의 AS 매장은 90여개에 불과하다. 170여개 서비스센터를 둔 삼성전자나 LG전자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다. 지난 3분기에만 국내에서 40여만대의 아이폰 판매량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 규모에 비하면 애플의 AS는 지나치게 인색하다. 아이폰 판매와 응용 소프트웨어(앱) 장터인 앱스토어 수수료 등으로 국내에서만 연간 최소 2조원대 이상의 매출을 챙겨가는 게 애플이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 새겨진 애플의 업적은 분명하다. 지난 2009년 출시한 아이폰으로 세계 스마트폰 업계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고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신시장도 창출했다. 덕분에 모바일 중심의 스마트라이프도 정착됐다. 애플은 또한 글로벌 기업으로 확실하게 올라섰다. 그렇다고 해서 애플에 이동통신업계나 소비자들마저 함부로 대할 특권까지 주어진 건 아니다. 국내 이동통신업계에 퍼진 "애플은 어떻게 해도 아이폰을 구매할 사람들은 다 산다”는 풍문의 과도한 믿음에서 비롯된 행태라면 오산이다. 적어도 글로벌 기업의 태도는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상 지위를 내세운 애플의 오만한 갑질은 현재진행형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산업1팀장

산업1팀장



허재경 산업1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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