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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해, '한우 영화제'를 열어 보자

입력
2021.01.01 06:00
27면
경북 청도군 우림목장. 뉴스1

경북 청도군 우림목장. 뉴스1


한국 고유의 소, 한우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길러온 재래종 '소'다. 예전부터 소는 우리 민족의 삶 곳곳에 자리매김했으며, 농촌에서는 큰 재산이자 농경을 돕는 일꾼으로 생구(生口)라고도 불렸다. 생구는 먹여 키워야 하는 식구라는 의미가 있으며, 그만큼 소가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직하고 성실한 이미지의 소는 전국의 지명에 사용되기도 했는데 '우금치' '우혜마을' '우무동골' '소똥령' 등 731개나 있다. 또한 이야기와 시, 그림 등의 문화예술 소재가 되기도 했다.

'황희정승과 소' 이야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다. 조선 시대에 18년간 영의정에 재임한 황희정승은 남의 장단점을 말하지 않는 불언장단(不言長短)으로 유명하다. 어느 날 그는 길을 가다가 멀리서 밭을 갈고 있는 한 농부에게 두 마리의 소 중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그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누렁소가 일을 더 잘한다고 대답했다. 왜 귓속말로 말하느냐고 묻는 황희에게 농부는 "비록 소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고 해도, 누가 누구보다 못한다고 흉을 보면 기분이 상할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황희는 그 말에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후로부터 더욱 언행을 조심했다고 한다.

소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할아버지 창고 한쪽에 걸려 있던 '멍에'가 생각이 난다. 멍에는 쟁기를 끌기 위해 소의 목덜미에 얹어 사용하는 구부러진 나무를 뜻한다. 할아버지는 산에서 멍에로 쓸 만한 나무가 있으면 그것을 직접 가져와 손질하시곤 했다. 창고에는 여러 개의 멍에가 걸려 있었고, 봄이 오면 할아버지는 창고 안의 멍에를 꺼내 부지런히 농사를 시작하셨다. 쟁기질하던 소가 말을 듣지 않을 때면 "멍에를 갈아야 할까 봐"라며 새 멍에를 소에게 얹어주셨다. 일을 도와 달라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그것이 싫어 꾀병을 부리곤 했던 기억이 오래된 사진처럼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점점 휘어져 가는 할아버지의 허리를 닮은 멍에는, 소와 할아버지가 연결되는 수단이었다.

우리에게는 소와 관련된 각자의 추억을 가진 이들이 많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관습, 풍속, 유적 등 우리 민족과 함께해 온 한우의 문화를 다시 한번 고찰하고, 더 발전시켰으면 좋겠다.

그중 하나로, 원 헬스 차원의 '한우 영화제'가 열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 헬스(One Health)는 사람, 동물, 환경이 하나의 건강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로,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개념이다. 이처럼 새롭게 부상하는 건강 패러다임의 가치를 살리는 데도 한우 영화제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한우 영화제에서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이나 '워낭소리' 등 소를 주제로 한 영화를 상영하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소가 출연하는 다큐 등 동영상을 공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소와 친숙하지 않은 다음 세대에게 멋진 한우 문화를 물려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다양한 콘텐츠 확보가 가능한 아시아 영화제로 확대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2021년 올해는 신축년, 즉 흰 소의 해다. 전통적으로 신성한 기운을 가진 흰 소는 백의민족인 우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기존의 문화에 새로운 가치를 더한다면, '100대 민족문화상징'인 한우가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에 진출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민승규 국립한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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