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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책략' 다시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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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결정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영남 만인소 사건도 빼 놓을 수 없다. 1881년 이만손을 필두로 한 영남 유생 1만명이 연명해 ‘조선책략’이란 책을 비판한 상소를 말한다. 요약하자면 “공자의 가르침으로 나라를 이끌어야지, 개화가 웬 말이냐”며 쇄국보수, 위정척사만이 조선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
조선책략은 1880년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했던 김홍집이 주일 청나라 공사관의 황준헌에게서 받았던 책으로 원래 이름은 ‘사의조선책략’이다. 고종과 조정 대신들이 조선책략에 대한 김홍집의 보고를 받고 개화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자, 유림들이 이에 발끈한 것이다. 물론 청나라 외교관이 단순히 선의로만 건네준 책은 아니다. 조선이 러시아의 입김 아래 놓이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과 손을 잡으라고 한 점이 핵심이다. 말하자면 이이제이 전략인 셈이다. 즉 남하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대비책으로 조선이 중국과 친교를 맺고, 일본과 결속하며,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나아가 영국 프랑스 등 구미 열강들과도 조약을 체결해 문호를 개방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재야 유림들의 극렬 반발로 고종의 개화노선 스텝이 잠시 꼬이는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서구열강 가운데 처음으로 미국과는 1882년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해 유구한 한미동맹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중국만 쳐다보던 조선이 구미 열강과 손을 잡은 지 138년. 오늘 대한민국은 개화파와 쇄국파로 양분돼 세력다툼에 골몰하던 당시와는 얼마나 다른가. 예나 지금이나 미국과 중국은 한국 외교의 상수 중의 상수다. 러시아와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 북한이라는 예측불허의 상대는 또 어떤가. 웬만한 배짱과 역량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다. 말 한마디, 행동 거지마다 상대를 배려하는 한편, 강단 있는 뒤끝도 있어야 한다.
이 와중에 강경화 외교장관의 실언과 대북전단금지법이 도마에 올랐다. 강 장관은 이달 초 북한의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빗대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희화화해 험한 말을 들어야 했다. 실낱처럼 이어지는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매우 아쉬운 발언이다.
반면 대북전단금지법은 예상되는 역풍에도 대응 시기를 놓쳤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유엔 등 국제사회 일각에서 제기하는 북한 인권문제와 표현의 자유 침해 운운은 전단 살포로 인해 위협받는 접경지 주민들의 생존권에 비하면 논리가 비겁하고 군색하다. 실제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제3국을 통한 북한 지원활동을 둘러싼 처벌 오해다. 이를테면 북ㆍ중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면 한국이 국내법을 적용해 처벌할 수 있다고 비난하는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인가?
어쨌든 이 땅을 살아가는 주인은 우리다. 게다가 대대손손 평화롭게 삶이 이어져야 한다. 주변국의 간섭에 휘둘려서도 안 되고, 달콤한 사탕발림에 곁눈질을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한미동맹이 안보의 보증수표였던 시대도 지났다. 아편전쟁 당시 영국 총리를 지낸 팔머스턴은 1848년 하원 연설에서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오직 이익만이 영원하고, 우리의 의무는 이익을 지키는 것이다”라고 설파했다.
이익을 국익으로 치환하면 외교의 ABC를 제대로 짚은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상대를 선의로 대하면 상대 또한 그럴 것이다’라는 기대심리는 국제정치학 어느 구절에도 나오지 않는다. 마키아벨리는 오히려 우리의 선의를 상대가 역이용해 파멸로 이끌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남겼다. 코로나19와 윤석열로 도배하다시피 한 2020년 세밑에 ‘군주론’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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