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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고 낮은 땅' 기네스의 고집

입력
2020.12.31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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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기네스의 전설

기네스 맥주의 설립자 아서 기네스가 1759년 체결한 양조장 부지 9,000년 임차 계약서 일부. guinness.com

기네스 맥주의 설립자 아서 기네스가 1759년 체결한 양조장 부지 9,000년 임차 계약서 일부. guinness.com


진한 포크 음악과 '더블린 사람들'의 제임스 조이스, 흑맥주 '기네스'는 아일랜드의 자랑거리다. 세계인의 노래 ''대니 보이(Danny Boy)'는 북아일랜드 민요(Londonderry Air) 가락에 잉글랜드 시인(Frederic Weatherly)이 가사를 지어 잉글랜드 민요라고도 하지만, 저 가락에는 북아일랜드가 영국이 되기 이전, 잉글랜드의 지배와 수탈이 시작된 16세기보다도 먼 바이킹과 노르만 정복기부터 침략과 저항, 디아스포라의 설움과 체념과 억눌린 분노가 밈(meme)처럼 스며 있다.

'대니 보이'의 가락은 조이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의 애잔한 정조, 특히 늙은 '두 자매'나 '더 데드'의 문장들에 밴 감상은 이 민요의 변주라 할 만하다. 예컨대 이런 문장. "그는 그 광경을 쳐다보며 인생을 생각했다. 그리고 (…) 슬퍼졌다. 잔잔한 비애가 그를 사로잡았다. 운명에 맞서 싸우는 것이란 얼마나 부질없는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운명도 누대에 걸쳐 그에게 남겨진 지혜의 짐일진대."(창비 번역 성은애)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Dublin)은 그들 언어로 '검고 낮은 땅(Dubh linn)이란 의미다. 기네스 맥주 브루어리의 창립자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1725~1803)가 대부(代父)에게서 유산으로 받은 100파운드를 밑천으로, 1759년 12월 31일 더블린 세인트 제임스 게이트(St. James Gate)의 다 허물어져 가는 양조공장 부지를 임차해 생의 승부를 건 아이템이 '완벽하고도 진한 흑맥주'였다는 건 우연치곤 고집스런 우연이다. 하지만 '향후 9,000년간 연세(年貰) 45파운드'라는 경이로운 부지 임차계약은 다부진 결기의 반영이었다.

근년의 기네스는 세계 50여국에 양조장을 두고 거의 전 세계에 진출한 흑맥주의 대명사가 됐다. 그 크리미(creamy)한 맛이 바다 건너 영국만 가도 달라진다는, 나빠진다는 평도 사연을 겹쳐 보면 예사롭지 않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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