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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선에 나와선 안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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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윤 총장, 대선 도전 쉽지 않아요."
전화기 너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뜸을 들였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선 도전 가능성을 물었던 참이었다. 윤 총장이 현 정부로부터 억울한 탄압을 받고 있다고 개탄하던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탄식하듯 말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윤 총장이 대선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고건 전 총리,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됐을 때 실패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그였다. 이번에도 맞을까.
추미애 법무장관이 거창하게 부풀렸던 윤 총장의 징계 사유가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징계위 결론 자체가 시사한다. 판사를 사찰하고 정치적 중립을 어기고, 수사와 감찰을 방해했다는 데도 고작 정직 2개월이라니. 인사권을 뺏기고 정직 처분에다 징계 꼼수 수모까지 당한 윤 총장의 억울한 심경이야 이해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정치적 억울함으로 따지면 현 정권 인사들이 할 말이 더 많을 것이다. 이 정부의 탄생 토대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당한 치욕과 비극적 죽음이 아니던가. 그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정의의 명분 뒤에 자리 잡은 정서는 원한과 복수심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수첩에 갖고 다닌다고 했는데, 지금도 품고 있는지 모르겠다. 윤 총장이 느닷없이 차기 대선주자 1위로 떠오른 배경에도 데칼코마니 같은 정서가 자리 잡고 있다. '정의의 화신'으로 윤 총장을 추켜세우는 열기 속에 도사린 것은 ‘문재인을 때려 잡아달라’는 복수심이다.
복수심이 대중적 차원으로 악화하면 증오를 낳는다. 무서운 것은 이 증오가 실제 강력한 정치적 힘을 발휘한다는 점이다. 철학자 에릭 호퍼는 일찍이 단결의 가장 중요한 동인으로 증오를 꼽았다. 그는 '맹신자들'에서 “하이네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하지 못하는 것을 공동의 증오가 해낸다고 말한다.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없어도 가능하지만 악마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갈파했다. 정치가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손쉽게 활용하는 게 증오다. 자칫 다음 대선에선 검찰을 악마화한 친문 진영과 ‘대깨문’을 악마로 보는 반문 간 아마겟돈적 전투가 치러질지 모른다. 양측 모두 역사 속에서 축적된 억울함을 품고 최후의 결전을 벼르고 있다.
윤 총장이 대선에 나선다면 반문 진영의 전사가 될 것이다. 기성 정치권에 속하지 않은 제3후보 바람이 늘 불었지만 이번처럼 강력한 정권심판론을 등에 업은 경우는 없었다. 과거 제3후보에겐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으나 이번은 그런 것도 없다. 증오심이란 실체가 있어 모호한 바람에 그쳤던 이전과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
하지만 법치주의자를 자처하는 윤 총장은 명심해야 한다. 정의와 복수의 차이가 무엇인가. 피해자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겠다면 그것은 복수다. 근대 사법체계에서 피해자가 수사권과 기소권과 처벌권을 갖지 못하는 이유다. 복수의 연쇄를 끊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선 제3자가 풀어야 한다.
노무현의 억울함을 문재인이 풀겠다고 나섰을 때 우리 정치는 복수가 복수를 낳는 미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윤 총장이 차기 대선에 나서 설령 승리하더라도 우리 정치는 복수의 쳇바퀴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정권으로부터 탄압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세운 건 용서였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한 시대를 매듭지을 수 있었다. 사실 윤 총장이 용서와 화해를 말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를 만큼 핍박을 받은 것도 아니다. 역사 속에서 검찰이 쌓았던 업보를 생각하면 윤 총장이 내세우는 정의의 무게가 얼마나 얄팍한지도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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