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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백신 나누기', 北 거부했다?...호응 가능성 있어

입력
2020.11.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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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0일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 평화의료센터에서 열린 남북보건의료협력 협의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20일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 평화의료센터에서 열린 남북보건의료협력 협의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을 북한에 나눠줄 수 있을까.'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코로나19를 매개로 한 남북 보건협력 띄우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북한 퍼주기' 논란이 뜨겁다. 이 장관의 제안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짚어봤다.


한국도 부족한데 북한 퍼주기? : X

이 장관은 20일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 평화의료센터에서 열린 남북보건의료협력 협의체 회의 모두발언에서 "머지않은 시기에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보급되면 (남북 간) 서로 나눔과 협력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며 남북 보건협력 성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장관은 18일 언론인터뷰에서도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남북 협력이 가능하냐'는 취지의 질문에 "우리가 많아서 나누는 것보다도 부족할 때 나누는 게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장관의 발언은 '북한 퍼주기' 논란으로 번졌다. 정부가 백신 공동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확보한 백신 물량은 1000만명분이다. 정부는 내년 전체 인구의 60%에 해당하는 3,000만여명분의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두고 국내 공급 물량도 부족한데 북한과 백신을 나누는 게 합당하냐는 문제 제기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당장 백신을 북한과 나누겠다는 뜻이 아니다"면서 "국내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국내용 백신이나 치료제를 북측에 공급해줄 순 없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마스크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국외 반출을 금했다가 마스크 공급이 원활해지자 제3국에 공급했던 것처럼 백신과 치료제도 국내 상황이 안정되면 남북 간 협력을 논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 장관이 '부족할 때 나눈다'고 표현한 것이 오해를 불렀다는 게 정부 측 해명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1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20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코로나19 관련 대응책을 논의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달1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20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코로나19 관련 대응책을 논의했다. 평양=노동신문 뉴스1


북한이 거절했는데도 매달리나? : X

이 장관이 코로나19 백신 대북 지원 가능성을 피력한 지 하루 만에 북한이 거부 의사를 밝혔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9일 1면 논설을 통해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느냐"며 코로나19 봉쇄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의 보도가 공교롭게도 이 장관의 언론 인터뷰(18일 오후9시 보도) 다음 날 공개됐지만 노동신문 발행 시스템상 18일에 이미 작성 완료된 기사로 봐야 한다. 특히 북한은 그간 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국경을 봉쇄하면서 중국 등의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피력해왔다. 이 사설이 백신 제안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봉쇄 필요성으로 인해 당장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을 재확인한 것이란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오비이락' 격의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북한이 남북 보건협력 여부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한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17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317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남북 보건협력 성사 가능한가? :△

정부는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등을 고리로 한 남북 보건협력으로 남북관계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을 포함해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함께하는 '동북아시아 방역 보건협력체'를 공식 제안했다. 이 장관도 20일 "남북 보건·환경 협력 패키지를 만들어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남북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대북 제재 면제도 포괄적이고 효율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당국 입장에서 보건협력은 마냥 거절하기 힘든 카드다. 특히 백신 개발이 완료되면 미국과 같은 부유한 나라 국민들이 우선 보급 받고 비용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북한과 같은 빈곤국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북한도 글로벌 백신 공동구매 기구인 '코백스퍼실리티'에 참여하고 있지만,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 여러 개발도상국들과 경쟁을 해야 해 백신 공급 시기를 장담 받을 수 없다. 백신 확보가 어려워지면 북한이 먼저 중국, 한국, 러시아 등 주변국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올 가능성이 크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도 백신과 치료제가 보급될 때가 되면 방역 장벽을 낮추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북한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공무원 피격 사건 등으로 대북지원에 냉랭해진 국내 여론을 설득하는 것도 향후 정부의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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