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도 없이 사라진 美 거물 노동운동가는 어디에

입력
2021.01.08 05: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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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9> 지미 호파 실종사건


1975년 갑자기 실종돼 지금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지미 호파 전 트럭운수노조 위원장의 생전 모습. AFP 자료사진

1975년 갑자기 실종돼 지금까지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지미 호파 전 트럭운수노조 위원장의 생전 모습. AFP 자료사진

1975년 7월 30일 오후 2시 미국 미시간주(州) 디트로이트 외곽 블룸필드 타운십의 한 음식점 앞 도로.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던 60대 남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저녁 메뉴로 스테이크를 직접 굽겠다며 아내에게 오후 4시까지 귀가를 약속하는 전화도 했지만, 다음날 아침 음식점 주차장에서는 주인 잃은 고급 자동차 폰티액 그랜드 빌만 덩그러니 발견됐다. 실종 직후 미 일간지 1면을 장식했던 전설적 노동운동가 ‘지미 호파’(본명 제임스 리들 호파)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1913년 인구가 1만명도 안 되는 소도시 인디애나주 브라질에서 광부 아버지를 두고 태어난 호파는 1957년부터 1967년까지 전미트럭운수노조(팀스터)를 이끈 거물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조를 만들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200만명을 헤아리는 조합원을 끌어모은 것은 온전히 그의 리더십 덕분이었다. 동시에 마피아와 결탁하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노조 운영 방식으로 비판도 많이 받았다. 실종 당일에도 그는 마피아 세력인 뉴저지 출신의 앤서니 프로벤자노와 디트로이트의 앤서니 자칼로네를 만나 노조 내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 생각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었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동운동가의 마지막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실종 이후 31년간 그의 사체라도 찾기 위해 뉴저지의 목초지까지 뒤졌던 미 연방수사국(FBI)은 제대로 된 단서조차 잡지 못했다. 결국 법원은 1982년 호파의 사망을 선고했고, 45년이 흘렀다.

미국 경찰이 2013년 6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외곽에서 지미 호파 전 전미트럭운수노조 위원장의 시신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AFP 뉴스1

미국 경찰이 2013년 6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외곽에서 지미 호파 전 전미트럭운수노조 위원장의 시신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AFP 뉴스1


美 노동운동 휘어잡던 거물의 실종

호파의 가장 큰 성과는 1964년 전국화물수송협약(NMFA)을 최초로 맺은 일이다. 이는 전국 45만명 이상의 화물 운송트럭 운전자가 같은 보호와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는 결정적 발판이 됐다. 모든 힘을 중앙으로 집중시킨 덕에 노조원들은 임금 등 근로조건 향상이라는 열매를 맛봤다. 당시 비평가들도, 노동계 동료들도 모두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던 숙원을 성사시키면서 호파의 명성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의 탁월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텀스터는 거침없이 세를 키웠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 추진력이 호파의 발목을 잡았다. 그에게 수단이 불법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조직 범죄에도 공공연히 손을 댔다. 당연히 수많은 정적이 생겨났다. 횡령과 부패가 켜켜이 쌓이면서 민심은 점점 돌아섰다. 호파는 노조원들의 퇴직금을 위해 모아둔 연금기금 수십만 달러를 빼돌려 플로리다주 부동산 개발에 투자하는 등 공금을 쌈짓돈처럼 마구 썼다.

결국 수사당국의 칼날이 호파를 겨눴다. 1960년 조직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존 F 케네디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였다. 법무장관이 된 대통령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부처 안에 아예 ‘호파구속팀’을 별도로 운영했다. 호파와 측근 기소를 목표로 조직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4년 뒤 호파는 노조 연금기금을 변조하고 사익을 위해 부당하게 기금을 사용한 혐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여기에 재판 과정에서 배심원 매수 혐의까지 추가돼 결국 13년형을 선고받은 그는 연방 교도소로 들어가게 된다. 복역 중에도 위원장직을 사퇴하지 않던 호파는 1971년 앞으로 10년간 노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리처드 닉슨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

그러나 사면 뒤 호파의 권력욕은 다시 꿈틀거렸다. 그에게 부과된 노조 사무실 출입 금지 조치는 불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위원장 자리를 빼앗을 계획에 골몰했다. 위원장 복귀가 제 뜻대로 되지 않자 그는 마피아의 힘을 빌려보려 했고, 범죄조직 인사들을 만나러 나선 길에 자취를 감춘 것이다. 때문에 수사당국은 실종 사건이 그의 정적들과 연결됐을 것으로 추측했다. 호파가 노조를 다시 장악하려 하자 위기감을 느낀 새 노조 지도부나 호파와 적대관계에 있던 기업이 마피아에게 살인을 청부했다는 게 유력한 가설이다.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 홈페이지 캡처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 홈페이지 캡처


성과 없는 재수사... 영화는 각광

오랜 시간이 흘러 범인을 찾지 못할 것 같지만, 재수사 소식은 지금도 종종 들린다. FBI는 사건 발생 26년 만인 2001년 수사를 재개해 각종 제보를 토대로 수차례 수색을 진행했다. 대표적으로 2006년 호파 실종 당일 굴착기가 목격됐다고 알려진 미시간주의 한 말 농장에서 대대적 수색 작전을 펼쳤다. 농장은 사건 당시 팀스터 노조 한 간부의 소유여서 권력 다툼이 살해 배경이 됐을 것이란, 그럴듯한 범죄 시나리오까지 등장했다. 주검 탐지견, 각종 중장비가 동원돼 며칠간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호파의 흔적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수사당국은 가장 최근인 2013년 6월에도 호파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식당에서 북쪽으로 32㎞ 떨어진 디트로이트 외곽의 한 들판을 사흘간 수색했다. 과거 디트로이트 마피아 조직을 이끌던 이의 아들이 제보한 내용이 바탕이 됐으나 역시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러자 장기미제 사건이 으레 그렇듯 ‘음모론’이 뒤따랐다. FBI가 진범을 알면서도 은폐했다는 내용의 책도 나왔다. 하버드 법대 교수로 미 법무차관보를 지낸 잭 골드스미스는 2019년 저서 ‘호파의 그림자에서’를 통해 다시 한번 미국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는 사건 당시 검찰이 호파의 부하였던 찰스 처키 오브라이언을 범인으로 지목하자 경찰은 다른 용의자 소행이라는 증거가 있으면서도 이를 묵살하고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디트로이트 마피아 구성원이었으나 숨진 인물이 진범이라는 설명이었다. 화제는 됐지만 설득력을 얻을 증거는 여전히 부족했다.

소문이 꼬리를 무는 호파 실종사건은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 최근까지 3편이 넘는 관련 영화도 제작됐다. 2019년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은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극본과 연출을 맡고 유명 배우 알 파치노가 호파를 연기해 공개 전부터 화제가 됐다. 실종 사건을 중심으로 1950~70년대 미국사회에서 마피아와 노조, 정치인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일해왔는지를 면밀히 그렸다. 평단의 호평은 물론이고, 3시간 29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강한 흡입력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 홈페이지 캡처

지미 호파 실종사건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영화 아이리시맨. 홈페이지 캡처


노조에 덧씌워진 호파의 그림자

호파는 사라졌지만 그의 존재감은 여전하다. 단적으로 그의 아들인 제임스 호파가 대를 이어 팀스터를 이끌고 있는 게 망자의 막강한 영향력을 뒷받침한다. 문제는 호파의 유산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마피아와 결탁하고 정치권과 얽힌 부패 노조’. 호파 시대 이후 만들어진 미국 내 노조에는 이런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실종 후 보통의 미국인들에게 호파만큼 알려진 노동운동가는 찾아 볼 수 없었고, 실제 1970년대 이후 노조원을 보호할 능력을 갖춘 노조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는 수십년이 지난 현재까지 미 노조들에 아킬레스건이다.

데이비드 위트워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미국학 교수는 2019년 LA타임스 기고에서 “호파를 오늘날의 노동운동 모델로 볼 수는 없다”면서도 “현실에서 노조는 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팀스터 역시 호파가 이끌던 시절과는 많이 달라졌다. 모든 조합원이 노조 지도부를 직접 뽑고, 관리ㆍ감독 체계도 단단해졌다. 그렇지만 좀처럼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해 트럭 운전사 대부분은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다. 요즘 장거리 운전자들은 주당 60~80시간을 일하는 반면, 임금은 1970년대와 비교해 절반이나 깎였다고 위트워 교수는 설명했다. 노조가 노동자의 보호막이 돼주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미 호파(맨 앞줄 왼쪽)가 1957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비치에서 노조대회 대의원들과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AP 자료사진

지미 호파(맨 앞줄 왼쪽)가 1957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비치에서 노조대회 대의원들과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AP 자료사진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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