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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을 포기하는 게 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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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노벨상 시즌은 비교적 차분했다. 그래서 오히려 수상의 의미와 수상자의 면면에 더 주목할 수 있었던 듯도 하다. 숱한 논란과 추문에도 노벨상이 건재한 건 물론 역대 수상자들의 업적 덕이지만, 엄청난 상금도 무시하기 힘들다. 1964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장 폴 사르트르를 가장 힘들게 한 것도 상금이었다.
사르트르는 10월 14일 노르웨이 한림원에 편지를 썼다. 수상자로 선정되더라도 수상을 거부할 것이니 후보 명단에서 빼달라는 내용이었다. 프랑스 언론이 그를 유력 후보로 보도한 직후였다.
하지만 한림원은 9월 17일 이미 그를 수상자로 결정한 터였다. 번복은 규정상 불가능했고, 그런 예도 없었다. 훗날 알려진 바, 그해 후보는 총 76명이었고 최종 경합자는 이듬해 수상자인 러시아 작가 솔로호프와 영국 시인 WH 오든이었다. 어조가 워낙 단호했던 만큼 그의 편지가 일찍 전달됐다면 한림원의 선택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한림원은 10월 초 그를 수상자로 발표했고, 사르트르도 소신을 고수했다. 둘의 줄다리기는 스캔들로 비화했다. 수상 거부 이유를 두고 '친구인 카뮈가 먼저 받아서' '사회주의자라서' 등 비열한 추측들이 난무했다. 급기야 사르트르는 10월 22일 "사적ㆍ공적 수상 거부 이유"를 공식 발표했다. 모름지기 작가는 작품으로 평가받아야 하며 제도화된 영예에 기대서는 안 된다는 게 사적 이유였다. 그냥 사르트르와 '노벨상 수상자 사르트르'를 독자들이 달리 볼 것이므로 레종도뇌르 훈장도 '콜레주 드 프랑스' 입회도 거부했고, 만일 레닌상을 주더라도 거부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공적 이유는 노벨상이 서방 작가를 편파적으로 우대해온 만큼 거기에 자기 이름으로 숫자를 불릴 수 없다는 거였다.
하지만 상금 때문에 힘들었다(been tortured)고 밝혔다. 그 돈이면 자금난을 겪는 런던의 아파르트헤이트위원회에 '공적으로' 큰 도움이 되리란 걸 알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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