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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확인된 유연근무제 생산성...생산직은 상대적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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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전 세계는 실험실이 되었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뿐만 아니라 이른바 ‘언택트’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기술과 시스템들이 시험대 위에 올랐다. 상점의 직원들을 키오스크로 대체하고, 교실과 강의실을 온라인 공간에 옮겨 놓으면서 과연 기술이 인적 자원이나 물리적 공간을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지를 시험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이나 특정 업종에서 도입하기는 했지만, 극히 제한적으로 시행되던 재택(원격)근무나 시차출퇴근제와 같은 유연근무제도도 코로나19로 인해 본의 아니게 시험대에 올랐다. 이에 한국리서치 ‘여론 속의 여론’ 연구팀은 여론조사를 통해 유연근무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파악해 보고, 유연근무의 미래를 진단해 보았다. 조사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시행되던 9월 11일부터 14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에 참여한 임금근로자 5명 중 1명 이상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회사 차원에서 일하는 장소나 시간을 근로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유연근무제도를 시행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사무직은 3명 중 1명이 직장에서 유연근무를 시행했다고 답했으며, 사무직 종사자의 30%가 실제로 유연근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전인 지난 8월,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서 기업 342개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유연근무를 실시한다는 응답이 36%였는데 이는 이미 지난해 같은 조사 대비 약 14%p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유연근무제도의 실험 결과는 어떠할까? 유연근무의 생산성에 대해서는 ‘재택(원격)근무’(36%) 보다는 기존의 ‘출근 근무’(42%) 방식이 더 생산적이라는 평가였으며, ‘유연시간근무’(47%)가 ‘정시근무’(26%)보다 더 생산적이라는 평가였다. 제도를 직접 사용한 임금근로자의 평가도 전체 응답자들의 평가와 유사한 결과를 보였다. 흥미로운 부분은 ‘차이가 없다’ 응답이 재택(원격)근무 22%, 유연시간근무 28%로 이를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유연근로근무제도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주목할 점은 응답자 특성에 따른 차이다. 연령대별로 20대는 재택(원격)근무가 생산성이 더 높다는 응답이 54%인 반면 60대 이상에서는 출근 근무가 더 생산적이라는 응답이 54%로 대조를 보였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30대다. 1980년~2000년 초에 출생한 20~30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고용감소나 일자리 질 저하 등을 함께 경험하고 IT 기기에 친숙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된다. 그런데 30대의 재택(원격)근무가 더 생산적이라는 응답은 35%로 20대(54%) 보다는 40대(37%)와 더 가까웠다. 이는 재택(원격) 근무의 생산성 평가는 연령 뿐만 아니라 자녀유무나 직급에 영향을 받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자녀가 없는 경우 재택(원격) 근무가 더 생산적이다는 응답은 47%로 자녀가 있는 경우보다 17%p 높았다. 사실상 자녀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직급별로는 사원이나 대리급에서는 재택이 37%, 출근이 38%로 반반이었던 것이 과차장급에서는 출근(52%)이 재택(29%)을 앞질렀다. 부장급 이상에서는 재택(원격)근무가 더 생산적이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으며 출근 근무가 더 생산적이라는 응답이 67%였다.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사원이나 대리급은 유연근무의 생산성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 하지만, 내외부적으로 업무를 조율해야 하는 과차장급이나 업무를 배분하고 평가하는 부장급 이상은 유연근무의 생산성에 한계를 느끼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유연시간근무 역시 재택근무와 마찬가지로 연령이나 직급이 낮고, 자녀가 없는 응답자가 유연시간근무의 생산성을 더 높게 평가했다. 다만, 응답자 특성별 차이가 재택(원격)근무보다는 적어 세대나 직급별 장벽이 보다 낮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응답자 10명 중 6명이 유연근무가 ‘일과 생활의 균형’(워라밸 work-life balance)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유연근무를 실제 경험한 응답자들의 평가는 더욱 긍정적이었는데, 유연근무 경험자 10명 중 7명이 워라밸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유연근무의 워라밸 개선 효과는 무엇보다 자녀유무에 따라 평가가 갈렸다. 자녀가 없는 경우 재택(원격)근무가 워라밸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66%였는데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이보다 15%p 낮았다. 자녀가 없는 여성이 71%로 가장 높고, 자녀가 없는 남성 63%, 자녀가 있는 여성 55%, 자녀가 있는 남성 47% 순으로, 자녀가 없는 여성과 자녀가 있는 남성은 20%p 이상 차이를 보였다. 유연시간근무 역시 자녀가 없는 경우 워라밸에 도움이 된다는 응답이 자녀가 있는 경우보다 10%p 이상 높았다. 이는 유연근무로 인해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이중고의 상황이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연근무제도의 미래에 대해서도 질문해 보았다. 코로나19 종식 이후에도 재택(원격)근무나 유연시간근무를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약 45%, 지금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은 30%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유연근무가 이전보다 확대된 점을 참작할 때, 유연근무를 코로나 시대의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즉 코로나19가 종식된 후에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연령대별로는 20대와 30대의 절반 이상이 유연근무를 확대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40대 이상에서도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이 40% 수준이었다. 직급별로는 워라밸 개선효과나 업무 생산성 평가에 비해 유연근무확대에 대해서는 의견차이가 좁혀졌다.
유연근무가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로 자리 잡는 다면 이로 인한 사회적 불균형이나 갈등의 여지는 없을까? 사무직과 생산직, 서비스직의 근로조건을 △보상 △근로시간, △작업환경, △복리후생, △유연근무여건, △능력발휘환경 총 6개 항목에 대해 11점(0점~10점) 척도로 평가해 보았다. 6개 항목 대부분 화이트칼라로 불리는 사무직이 높았다. 사무직은 특히 작업환경이 안전하고 쾌적한지 평가한 △작업환경(생산직 대비 +2.2점, 판매직 대비 +1.8점)과 △유연근무여건(생산직 대비 +2.3점, 판매직 대비 +2.1점)에서 높았다. 코로나19 이후 작업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열악한 작업 환경은 직무 만족도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유연근무가 확대된다면, 유연근무가 어려운 생산직이나 서비스직은 상대적 박탈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생산직과 서비스직은 업무 특성상 생산수단이나 서비스 제공 대상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어 유연근무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기업이나 정부의 노력에 한계를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번 조사는 코로나19로 인해 유치원이나 학교가 온라인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등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져 육아부담이 과도하게 반영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유연근무가 보편적인 근무형태가 된다면 육아가 생산성이나 워라밸 개선에 걸림돌이 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은 남겨 주었다. 또한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논쟁이 작업환경이나 유연근무 여건의 문제로 인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재점화 되지 않도록 기업이나 정부의 관심과 선제 대응이 요구된다. 온라인 개강이라는 전례 없는 대학생활을 보낸 20대가 우리 경제의 중추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교실보다 ZOOM이 익숙한 10대도 곧 경제활동을 하게 될 것이다. 이들이 기업 문화를 바꾸어 유연근무가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이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최선아 차장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사업2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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