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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진척 기제로서 공론화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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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는 문재인 정부를 상징할 대표적인 국정 운영 방식일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민적 심판과 탄핵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 중심 민주주의를 표방하였으며, 이를 실현할 방도로 시민이 참여하여 숙의하고 토의함으로써 정책을 결정하는 시민 참여 공론화를 제시하였다. 신고리 5ㆍ6호기 시민 참여형조사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시민의 토의 결과만으로 현안 갈등 사안을 결정하고 추진한 세계 최초의 성공 사례라 할 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후가 마땅하지 않았다. 대입제도 공론화 결과를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있었고, 각급 지자체 등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한 공론화는 정책 당국의 책임회 피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전문가 집단에서 지금까지의 공론화 추진 상황에 대한 반성과 함께 대안에 대한 논의가 진지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유이다.
한국리서치는 시민 참여 공론화가 작금의 대의민주주의의 제한점을 보완하는 유력한 기제라는 관점에서 작년부터 전국의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공론화에 대한 인식과 경험을 확인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 시민도 전문가 집단의 문제의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공론화에 참여하여 달라는 요청을 받을 경우 참여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은 2019년 34%에서 올해 29%로 5%포인트 하락하였다. 공공정책과 관련한 어떤 사안이든 공론화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응답은 2019년 29%에서 올해 26%로 낮아졌고, 외교 안보 등 일부 사안을 제외한 대다수 공공정책은 공론화 의제로 삼을 수 있다는 응답도 2019년 24%에서 올해 20%로 떨어졌다. 두 결과를 합하면 공공정책을 공론화 의제로 삼는 것에 대해 7%의 국민이 회의적인 입장으로 선회한 것이다. 공론화를 통한 정책 결정 과정에 전문가가 참여하여 공론화 결과를 검토하거나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은 73%에서 79%로 6%포인트 상승하였다. 모두 기존의 공론화 운영과 결과활용 방식에 대한 반성적 입장이 투영된 결과라 하겠다.
그렇지만, 우리 시민이 공론화 무용론을 피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이나 당사자 간 첨예한 이해충돌로 인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거나, 대한민국의 미래상과 관련한 주요 사안에 대해서는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시민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설문에서 제시한 8개의 현안 정책 또는 주요 국정 의제 모두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과반을 상회한다. 공론화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모르겠다는 응답을 감안해서) 최소 16%, 최대 37%이다. 이런 결과를 통해 시민의 인식 지형을 확인해 볼 수 있다. ‘거주지역 내 혐오시설 수용 여부’와 ‘주택 부동산 정책’을 공론화해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상회하며 가장 높았다.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민생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두 번째로 높은 사안은 ‘개헌’ ‘행정수도 이전’ ‘재난기본소득 지급범위 결정’ ‘의료정책’ 등이다. 쟁점 현안이거나, 진영 또는 이해당사자 간 오래된 논쟁 사안들이다. 세 번째 범주에 해당하는 의제는 ‘지자체 예산편성 운영 방안’과 ‘기후변화 대응’이다. 제도 및 시스템과 관련한 중장기 의제라 할 것이다. 즉, 시민은 자신의 일상생활과 관련한 의제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충만하며, 쟁점현안에 대해서도 발언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또한, 제도 및 시스템과 관련한 중장기 의제에 대해서도 관여하고자 한다. 시민은 정책과 국정 운영의 주체로서의 소임을 회피하려 하지 않는다.
공론화에 대한 시민의 관심과 열의는 코로나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도입한 온라인 공론화에서도 알 수 있다. 올해 조사에서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론화 방식 대비 온라인 공론화의 효과에 대한 생각을 확인한 결과, 온라인 공론화가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론화에 비해 효과가 더 크거나(29%) 별다른 차이가 없을 것이다(34%)는 응답이 63%이다. 공론화 효과가 적을 것이다는 응답은 22%에 불과했다. 온라인 환경이 차츰 일상이 되면서 온라인 공론화에 대한 시민의 우려나 염려가 크지 않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온라인 공론화 참여 의향은 41%로 오프라인 공론화 참여 의향 29%에 비해 12%포인트나 높았다. 이는 물론 온라인 공론화를 경험하지 않은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다. 그럼, 실제로 온라인 공론화를 경험하여 본 시민은 어떻게 생각할까?
한국리서치는 경기도청과 함께 올해 9월에 2일 동안 경기도민 239명을 대상으로 완전 재택 온라인 공론화를 시행하였다. 온라인 공론화에 대한 전반적 만족도는 93%에 달했다. 한편, 온라인 공론화 효과의 논점이라 할 숙의 및 토의 효과에 대해 오프라인 대비 장점이 더 많다는 응답이 65%, 별다른 차이 없다 22%, 단점이 더 많다는 응답이 13% 등으로 나타나, 다수의 온라인 공론화 참여자는 온라인 공론화의 숙의 토의 효과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음을 알 수 있다. 이로 인해, 선택 상황이 주어진다면 52%는 온라인 토론회에 참여하고 싶다고 했고, 오프라인 토론회에 참여하고 싶다는 응답은 9%에 불과했다.(어떤 형태든 상관없다 39%) 온라인 공론화를 언택트 시대의 부산물이 아니라 공론화 측면에서 숙의 토의 효과까지 제고할 수 있는 개선된 방안이라는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이 보다 타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사례를 통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0
전문가 그룹에는 일반시민이 참여하여 정책을 결정하거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주요한 고려 요건으로 삼는 공론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공론화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면서 운영 방식에 비판적인 전문가도 있다. 엘리트 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입장이 다수라 할 것이다. 일반 시민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공론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 정책의 주체로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 다수이다. 그렇지만, 공론화를 추진하는 정부나 이해당사자가 공정하고 투명한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점에서 매우 놀라우면서 주목되는 결과가 있다. ‘공론화 추진과 관련한 논란을 최소화 하고, 공론화 전반을 보다 공정하게 수행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법정 기구화 하여 상시적으로 운영하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찬성하십니까, 반대하십니까’라는 질문에 2019년 2020년 모두, 찬성한다 57%, 반대한다 19%, 모르겠다 25로 동일하였다. 공론화위원회 법정 기구화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반대한다는 응답에 비해 3배 높고, 공론화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대두되고 있는 올해에도 관련 응답은 떨어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공론화를 국정 운영의 상징으로 다시금 부상시켜 민주주의를 한 뼘 진전시킨 정부로 자리매김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상황도 되레 기회가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민주주의 측면에서 공론화의 본래적 의의와 효능이 퇴색한 것은 아니다. 시민과 전문가 그룹에게 공정과 투명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 관건이라고 할 것이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본부장 cskim@hr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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