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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전지훈련에 가짜 전용버스…그들은 정식 축구부 아닌 축구 동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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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범죄, 당신을 노린다] <25>축구 입시 사기
※사기를 포함한 지능범죄는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더욱 고도화하고 있습니다. 일확천금의 미끼에 낚이는 순간, 당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일보>가 격주 화요일에 연재하는 지능범죄 시리즈에서는 그 덫을 피해가는 지혜까지 전해드립니다.
“마침 내년에 수도권 대학에서 축구부를 새로 창단합니다. 아드님이 지방에서 축구를 하기엔 아까운 실력이라고 들어서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김순자(가명ㆍ61)씨가 중ㆍ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을 오랫동안 했던 A(60)씨로부터 이런 제안을 들은 건 2010년 11월. A씨는 학원 축구계에서 나름 이름이 난 노령의 감독이었다. 그는 곧 경기도의 한 대학에서 새롭게 축구부를 창단한다고 했다. A씨는 대한축구협회 로고가 박혀 있는 수첩을 흔들며 “이런 기회는 없다”며 김씨를 유혹했다.
당시 축구 밖에 몰랐던 이대성(가명ㆍ18)군은 홀몸인 김씨가 금지옥엽으로 키운 하나뿐인 아들이다. 김씨는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아들의 꿈을 응원하고 싶었다. 매달 수십 만원이 넘는 훈련비에 명절 때마다 감독님 ‘떡값’까지 챙기느라 등골이 휘어졌어도 아들을 보며 버텼다.
A씨의 말을 전해들은 이군의 마음은 흔들렸다. “지방대보다 서울 근교에서 축구를 계속하다 보면 다른 감독의 눈에 띄어 실업팀이라도, 운이 좋으면 하부 리그라도 갈 수 있겠지.” 이군은 꼭 박지성, 이영표가 되지 못해도 좋았다. 프로팀 유니폼을 입을 수 있다면, 축구를 계속할 수만 있다면. 그만큼 절박했다.
이듬해 3월 이군은 2011학번 P대학 스포츠경영학과 새내기가 됐다. 감독인 A씨는 선수들과의 첫 만남에서 “우리대학 축구부 창단 멤버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이제 고등학생이 아니니, 정식 선수가 된 만큼 적당히 할 생각은 버리라는 얘기였다. 어머니 생각에 이군은 더욱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축구를 하기 위해선 등록금에다 매달 합숙비ㆍ훈련비 명목으로 100만원이 넘게 들었다.
입학식 전인 그해 1월 감독과 축구부 신입생 10여 명은 전남 해남군으로 전지 훈련을 다녀왔다. 새로 맞춘 파란색 상의와 흰색 하의로 이뤄진 유니폼을 받은 신입생들은 ‘정말 대학 선수가 됐구나’하는 생각에 들떴다. 화려한 대학 마크가 큼지막하게 박힌 축구부 전용버스도 있었다. 같은 곳으로 훈련을 온 다른 대학 축구부와의 연습 경기 스케줄도 빽빽하게 잡혔다. 버스에 오른 신입생들은 “창단 멤버로 전국대회에서 사고 한 번 치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3월부터 본격적인 ‘캠퍼스 라이프’가 시작됐다. 수업과 훈련이 병행됐다. 전국 대회에도 당당하게 출전하고, 여학생들과 미팅도 했다. 그 즈음 이상한 점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다른 과 학생들과 다르게 축구부 신입생들만 별관에서 수업을 듣거나 숙소가 따로 없어 학교 근처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가끔 경비업체 아르바이트도 가야 했다. 각종 행사에 동원한 감독은 “용돈을 챙겨주겠다”는 이유를 댔다. 이군을 비롯한 동기들은 의심을 거두지 못했지만 ‘체육이 다 이런 거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축구선수 꿈을 짓밟은 사기꾼들
치밀한 사기의 실체가 드러난 건 2011년 하반기다. 갑자기 교육부에서 학교로 감사를 나왔다. 온종일 경비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학부모가 미심쩍게 여겨 교육부에 신고를 한 것이다. 감사 결과가 발표되자 이군과 동기들은 충격에 빠졌다. 알고 보니 그들은 P대학 정식 입학생이 아닌 계약학과 교육생이었다.
계약학과는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기업이 근로자 재교육을 위해 대학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교육부 승인 없이 특정학과를 신설해 학사 학위를 부여하는 제도다. 대학은 정원 외 학생을 받아 재정을 채우고 해당 기업은 근로자를 재교육하라는 게 제도의 취지였다.
A씨는 이 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경비업체 대표 B(42)씨와 꾸며 학생들을 직원으로 위장 취업시킨 뒤 대학에 계약학과 개설을 요구한 것이었다. 본래 업무인 경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스포츠경영학 전공이었지만 대학은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B씨는 경비원 수를 크게 늘려 대형 계약을 따내고, A씨는 합숙비ㆍ훈련비ㆍ회비 등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구조였다.
이군은 정식 축구부가 아닌 계약학과의 축구 동아리원이었던 셈이다. 대한축구협회에 정식으로 등록된 대학 선수도 아니었다. 유니폼도, 전용버스도 모두 A씨가 꾸민 자작극이었다.
1년도 안 돼 P대학 스포츠경영학과는 폐지됐다. 황당한 일이었다. 대학은 뒷말이 무성해질 것을 우려해 갈 곳 없는 학생들에게 “다른 전공으로 전과해 졸업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구제안을 내놨다. 하지만 실망한 이군은 “축구가 아니면 의미가 없다”며 입대를 선택했다. 아들의 꿈이 사그라지는 걸 지켜본 김씨는 “한순간의 실수로 아들 인생을 망친 것 같아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고 당시의 심정을 표현했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A씨는 이후에도 비슷한 수법의 사기를 이어갔다. 다른 두 대학에서 같은 방식의 계약학과를 개설해 2013년 10월까지 55명의 피해자로부터 8억1,000만원을 챙겼다. 1년마다 다른 대학으로 넘어가는 ‘갈아타기’식 범행이었다. 일부 학부모는 “이번엔 진짜 정식 축구부”라는 A씨의 말에 세 번 연속으로 속기도 했다. 부모들 대부분은 A씨의 입김에 자식들의 장래가 막힐까 봐 경찰에 신고를 하지 못하고 끙끙 앓았다. 경찰 수사로 범행 전모가 확인된 건 P대학 사건 이후 4년이 지난 2014년이다.
◇브로커 연결 고리로 드러난 세 갈래 사기
최근 경기 수원시 경기남부경찰청에서 만난 고혁수 광역수사대장(당시 강력2팀장)은 2014년 체육계를 발칵 뒤집었던 축구 입시 비리를 되짚었다. 이 사건을 수사했던 고 대장은 “그해 1월 들어온 한 건의 제보가 내사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Q대학 축구부 감독이 제가 모시고 있는 감독님으로 바뀌는데, 아드님을 특기생으로 선발할 수 있답니다. 그러려면 이사장도 만나고 해야 하니 떡값 명목의 돈이 필요합니다.”
축구선수 출신의 브로커 C(32)씨가 대학 축구부 감독 내정자라는 D(52)씨를 선수들 부모에게 이렇게 소개하며 뒷돈을 요구했다는 제보였다. D씨는 대학 설립자의 사위 E(83)씨를 보증인으로 내세웠다. 전형적인 축구 입시 사기였다.
이 사건에 엮인 피해자는 확인된 것만 24명이었다. 추가로 경찰이 브로커 C씨를 추적해보니 범행은 한두 건이 아니었다. 고구마 줄기처럼 숨겨져 있던 ‘사기의 고리’가 줄줄이 드러났다.
C씨는 인맥을 이용해 프로구단에 입단시켜주겠다며 돈을 받아 챙긴 현직 대학교수 F(60)씨에게 선수를 소개하기도 했다. 계약학과를 악용한 A씨의 사기도 그 중 하나였다. 경찰이 C씨를 검거하면서 별개로 보였던 AㆍDㆍF씨가 연루된 사기들이 거대한 퍼즐로 완성됐다.
사건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피의자만 19명에 공식 수사 기간은 7개월을 넘겼다. 피해자는 총 81명에 피해금액은 20억원에 달했다. 피해자들은 서울부터 부산까지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었다. 진술을 모으기 위해 수사관들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선수 부모와 브로커가 만난 카페들을 수소문해서 금품을 주고 받은 정황을 입수하고 압수수색으로 대포통장을 확보해 증거를 쌓았다.
수사관들은 피해자들의 사연을 하나하나 수집하며 “괘씸해서라도 꼭 잡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하반신 장애를 가진 한 어머니는 아들만은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들에게 넘어가 1억5,000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친형제가 같은 수법에 당해 둘 다 축구를 포기하기도 했다. 사기를 당한 충격에 부모와 자녀 모두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선수로 만들기 위해 최선 다했을 뿐” 뻔뻔한 감독들
경찰의 끈질긴 설득에도 진술을 거부하는 학부모들은 적지 않았다. 자녀 앞에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다고 믿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경찰이 전부 사기라고 하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수사 협조가 사실상 축구계에서 ‘매장’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도 했다. 피의자 대부분은 축구계 선후배 내지 사제지간으로 이뤄진 끈끈한 인맥이었기 때문이다. 주범인 C씨 등 브로커들도 감독 내정자 행세를 한 D씨나 현직교수 F씨의 제자였다. 일부 학부모들은 범죄에 연루돼 수사를 받아도 선수 출신 감독과 브로커들의 ‘영향력’이 여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도 입시 비리의 공범’이란 죄책감에 처음부터 진술을 거부한 학부모들도 있었다. 고 대장은 “당시 추산한 피해자가 200명 가까이 됐지만 절반 이상이 수사 협조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많은 피해자들이 입을 닫으니 피의자들은 더 뻔뻔하게 나왔다. 경찰 조사에서 하나 같이 “아이들을 축구선수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빌린 돈일 뿐 갚을 생각이었다”고 입을 맞춰 진술했다. 그러곤 뒤에서 부모들을 따로 만나 “곧 다른 대학 체육특기생 자리를 꼭 알아봐주겠다”는 식으로 회유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것도 당장 빠져나가기 위한 거짓말로 드러났다. 피해 선수 중 대학이나 프로구단에 정식 입학하거나 입단한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D씨는 ‘남의 자식’ 꿈을 판 돈으로 독일 유학 중인 자신의 아들에게 매달 유학비 250만~300만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수원지법은 2014년 10월 사기 혐의로 기소된 C씨 등 3명에게 각각 징역 1년 6월~2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있지만 범행 액수가 크고 아직 복구되지 않은 피해가 많아 실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2015년 11월 대학교수 F씨에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3년간 학부모 9명에게 19회에 걸쳐 3억1,950만원을 챙겼지만 피해자들이 처벌불원서를 제출한 점이 인정돼 실형을 피했다.
사건 이후 대학의 계약학과 제도는 개선됐다. 교육부는 2015년 11월 계약학과가 위장취업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에 9개월 이상 재직해야 입학이 가능하도록 요건을 강화했다. 고 대장은 “축구 입시 사기는 선수와 부모의 꿈을 인질로 삼는, 아주 질이 나쁜 범죄”라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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