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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콜드케이스] “목말 탈래?” 따라간 소녀의 주검, 55년 만에 용의자 잡았지만

입력
2020.01.16 22:30
수정
2020.02.06 11: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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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리아 리덜프 살인사건

5년간의 재판 해결 눈앞에 두고 무죄 입증할 증인 나타나 충격

목격담은 난무하지만 스모킹건 없어 미국 최장기 미제사건으로

※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마리아 리덜프 살해 혐의로 사건 발생 55년 만인 2012년 기소된 잭 맥컬로.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마리아 리덜프 살해 혐의로 사건 발생 55년 만인 2012년 기소된 잭 맥컬로. AP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저씨가 목말 태워줄까?”

첫눈 예보가 마음을 들뜨게 하던 1957년 12월 3일 저녁,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모어의 한 주택가에서 금발머리를 뒤로 쓸어 올린 젊은 청년이 두 여자아이에게 다가와 물었다. 7살 마리아 리덜프와 한 살 위 캐시 채프먼은 해지는 것도 모르고 둘만의 놀이에 푹 빠져 있던 차였다. 나무와 건물 그림자 사이를 잽싸게 옮겨 다니며 지나가는 자동차 전조등 불빛을 피하는 단순한 놀이였지만, 저녁시간 주택가는 두 아이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갸름한 얼굴에 큰 치아가 인상적이었던 남자는 자신을 24살 ‘조니(Johnny)’라고 소개했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인형을 손에 든 마리아는 선뜻 그의 어깨 위에 올라앉았다. 남자가 마리아를 태우고 눈 내리는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동안 옆에서 나란히 걷던 캐시는 손이 시렸다. 털장갑을 가져오기 위해 집에 들렀던 캐시가 15분여 만에 돌아왔을 때 마리아와 남자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목말 납치 사건’은 미국 전역을 뒤집어놓았다. 친구와 나가 노는 게 아이들의 유일한 오락거리였고, 집집마다 대문을 열어놓고 살던 1950년대 미국에서 유아 납치사건은 흔한 범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카고와 뉴욕 등 대도시에서 취재진이 몰려왔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당시 대통령도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을 정도였다. 지역 경찰과 주민 3,000여명은 물론 미 연방수사국(FBI)도 요원 60명을 급파해 수색작업을 펼쳤다. 하지만 실종지점 인근 차고 앞에서 발견된 마리아의 인형 외에는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겨우 8살이었지만 유일한 목격자였던 캐시도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경찰은 캐시가 밝힌 인상착의에 맞춰 금발의 젊은 남성 성범죄자 머그샷(mugshotㆍ수용기록부용 사진)을 수십장씩 가져왔다. 캐시는 사진 속에서 마리아를 데려간 남성을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새해가 밝아도 돌아오지 않던 마리아는 실종 5개월이 지난 1958년 4월, 숲 속에서 버섯을 캐러 나온 농부 부부에 의해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반세기 미제사건을 건져낸 유언

자백은커녕 그 흔한 DNA 증거 하나 없이 미제사건으로 묻혀 있던 마리아 리덜프 살인사건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건 의외의 인물이 털어놓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1994년 임종 직전의 여성이 두 딸을 불렀다. 그는 딸들의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평생 감춰온 비밀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 여자아이들, 그리고 사라진 한 명. 존이 그랬어. 누군가에게 알려야 해.”

존 테시어는 이웃에 살던 17살 소년이었다. 사건 초기 경찰은 존을 수사망에 올렸지만 그는 그날 공군 지원을 위해 시카고에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고 알리바이를 댔고, 그의 부모도 해당 사실을 확인해 용의선상에서 벗어났다. 존의 의붓여동생들은 즉각 오빠를 신고했으나 존의 혐의를 증언할 어머니가 사망하면서 사건은 다시 긴 잠에 빠지는 듯했다.

마리아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존의 여동생들은 2008년 다시 수사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시카모어 경찰이 재수사에 나섰다. 사건 당시 수사관을 비롯한 대다수 핵심인물이 이미 사망한 상태라 탐문수사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또다시 뜻하지 않은 곳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나왔다.

경찰은 존의 10대 시절 사진을 찾기 위해 그의 고교시절 여자친구를 찾아갔다. 그리고 창고를 뒤지던 중 검표 도장이 찍히지 않은 미사용 상태의 시카고행 열차 탑승권이 발견됐다. 일반 판매용이 아닌, 정부가 군 지원자들의 신체검사를 위해 발행해주는 탑승권이었다. 존의 전 여자친구가 이를 보고 “마리아가 사라지기 전날 티켓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증언하면서 시카고에 있었다는 존의 알리바이는 반세기 만에 깨졌다.

또 다른 핵심 증거는 이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캐시의 증언이었다. 61세가 된 캐시는 경찰이 제시한 여러 남성들의 사진 속에서 52년 전에 본 존의 얼굴을 곧바로 짚어내며 “이 사람이 바로 ‘조니’”라고 단언했다. 2011년 7월 경찰은 71세 용의자를 체포했고, 일리노이주 검찰은 이듬해 그를 기소했다. 사건 발생 55년 만이었다.

◇법정에 선 ‘최장기 미제 살인사건’

존은 사건 이후 개명해 잭 대니얼 맥컬로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었다. 맥컬로는 공군에 입대해 13년간 복무한 뒤 경찰에 투신, 워싱턴주에서 일했던 전직 경찰관이었다. 그는 검찰 조사 내내 “사건 당시 시카모어에서 40마일(약 64㎞) 떨어진 락포드의 입영소에 있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마리아는 동네에서 사랑받던, 큰 갈색 눈에 놀랍도록 예쁘게 생긴 상냥한 아이였다”고 회상했다.

검찰은 그가 피해자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점을 되레 수상히 여겼다. 담당검사였던 클레이 캠벨은 “그가 굉장히 집착했던 대상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이후 CBS방송에서 말했다. 다른 용의자 후보를 제시하며 관심을 돌리려 한 것도 전형적인 범인의 반응이었다. 맥컬로는 “그 사람도 나와 키가 비슷하고 얼굴도 닮았다”고 진술했는데, ‘범인의 인상착의와’ 닮았다고 하지 않고 ‘나와’ 닮았다고 말한 게 사실상의 자백처럼 비치기도 했다.

궁지에 몰린 맥컬로는 더 구체적인 알리바이를 내놨다. 그는 “마리아가 납치된 시각은 오후 7시쯤인데 그날 6시57분 입영소에서 수신자부담 전화를 걸었다”며 관련 기록이나 증인을 찾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마리아가 납치된 시각이 정확하지 않아 그가 범행 이후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 전화를 걸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반박했다.

거기에 동료 수감자들의 증언까지 나오면서 검찰 판단에 힘이 실렸다. 수감자 세 명이 일제히 “맥컬로가 실수로 마리아를 죽였다고 털어놨다”고 한 것이다. 캠벨 검사는 “그들과 플리바게닝(사전형량조정제도)을 시도한 건 아니었다”며 진술의 신빙성에 무게를 실었다.

여론도 맥컬로에게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가 감옥에서 보낸 5년간 미 언론은 재판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하며 “미국 최장기 미제 살인사건이 해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판결 그리고 남겨진 의문

하지만 2016년 다시 맥컬로의 무죄를 입증할 증인이 나타났다. 마리아의 실종 시점에 맥컬로와 락포드의 입영 대기소에서 대화했다는 사람이 나온 것이다. 맥컬로가 주장한 통화기록도 발견돼 그의 시간대별 동선이 대략적으로 그려졌다. 결국 2017년 4월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결 직후 맥컬로는 “검찰이 내게 한 짓은 범죄”라며 “그들은 내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교도소에 처넣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리아 리덜프 살인사건이 다시 최장기 미제사건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갑론을박은 끊이지 않았다. 물리적 증거의 부재로 정황 증거와 목격담은 난무했지만 많은 단서가 그를 향한 건 분명했기 때문이다. 목격자 캐시가 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는 사실이 특히 많은 이들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사건 당시 겨우 8세였고 현재는 고령인 목격자의 증언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1950년대 시카모어의 동네 분위기를 고려할 때 맥컬로가 범인이라면 당시 캐시가 이웃에 살던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리 없지 않냐는 것이다.

맥컬로의 자백을 들었다는 동료 수감자들의 증언도 세부 내용에서 엇갈려 미덥지 못하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시신 부검 결과에 따르면 마리아는 흉기에 찔려 사망했지만 한 수감자는 맥컬로가 마리아를 높은 곳에서 떨어트렸다고 말한 반면 다른 수감자는 질식사시켰다고 했고, 나머지 한 명은 소리 지르는 마리아를 조용히 시키려다 목을 조른 것으로 들었다고 주장했다.

정확한 범행시각도 논란의 대상이다. 마리아의 모친은 딸이 저녁식사를 마치고 오후 5시50분쯤 놀러 나갔다고 FBI에 증언했다. 하지만 ‘조니’가 마리아를 납치한 시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6~7시 사이인 것으로만 추정되고 있다. 두 아이가 만난 지 얼마 안돼 범행이 발생했다면 맥컬로의 알리바이는 손쉽게 무력화될 수 있는 만큼 아직 그의 혐의가 완전히 벗겨진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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