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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업! K리그] 해병대ㆍ용비늘 유니폼… 스토리 입힌 디자인으로 소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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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유니폼의 의미 있는 진화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K리그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되지만 스타들의 해외 이적과 구단 운영의 ‘자금줄’ 역할을 하던 기업ㆍ지방자치단체의 지원 축소 등 악재가 겹치며 암흑기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일보> 는 연중기획 [붐 업! K리그]를 통해 프로축구 흥행을 위한 과제를 짚고, 축구계 모든 구성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K리그 부활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해 볼 예정이다. 한국일보>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입는 유니폼의 전통적 기능은 피아식별이다. 흑백TV가 많던 시절 유니폼의 채도까지 신경 써 ‘홈 팀은 짙은 색, 원정 팀은 옅은 색’을 입기로 한 전통은 지금까지도 내려온다지만, 중계 기술을 포함한 미디어 생태계가 날로 발전하고 있는 오늘날의 유니폼은 선수들의 결집력을 높이는 기능은 물론 산업적, 사회적 기능까지 담고 있다.
스포츠마케팅 전문가들은 유니폼의 기능이 무궁무진하다고 해석한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유니폼은 소속감을 드러내는 기능이 크지만 최근엔 팬들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는 소통 창구로서의 역할을 넘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기능도 커지고 있다”고 했다. K리그 구단들도 저마다 재기발랄 한 디자인에 다양한 스토리를 입힌 유니폼들을 속속 내놓으며 팬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부여하고 소비자(팬)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K리그 유니폼이 어느덧 연고지 팬들은 물론 사회와 소통하는 매개체로 진화 한 셈이다.
◇해병대 치켜세운 포항, 여심 흔든 부산
포항은 지난달 15일 해병대 창설 70주년을 기념한 한정판 유니폼을 출시했다. 구단을 상징하는 ‘검빨(검정과 빨강) 줄무늬’ 가운데 검정색을 옅게 처리하는 대신 목과 소매, 등번호를 노랑색으로 처리해 해병대 셔츠를 연상케 했다. 유니폼 전면엔 해병대 엠블럼을 담고, 해병대의 영문 표기 ‘Marine’을 새겨 넣었다. 이유는 지난 30년간 이어온 해병대와 인연을 되새기고, 꾸준히 응원해준 장병들을 위한 보답이다.
포항과 해병대의 인연은 프로축구가 태동한 1980년부터 시작됐다. 포항이 프로구단으로 전환한 뒤 이 지역에서 복무중인 해병대 1사단 장병들을 경기에 초대한 게 시작이었다. 이후 서포팅 협약을 맺어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해병대원들이 스틸야드를 찾아 포항을 응원한다. 전반 중반 스틸야드에 울려 퍼지는 해병대 군가 ‘팔각모사나이’는 어느덧 구장의 명물로 자리잡기도 했다. 신주현 포항 마케팅팀장은 “포항의 경우 오랜 시간 인연을 맺은 해병대에 고마움을 표하고, 지역 정체성까지 살릴 수 있겠단 판단이었다”고 전했다.
K리그2(2부 리그) 부산은 지난 7일 홈경기를 ‘핑크데이’로 정하고, 지난해 하반기부터 크게 늘어난 10~20대 여성 팬들의 마음을 흔들 핑크색 유니폼과 머플러를 한정판으로 내놨다. ‘벚꽃’이 흩날리는 시즌을 맞아 여성 팬들에게 새로운 디자인의 상품을 제안한 부산의 시도는 대성공이었다. 구단 관계자는 “선주문을 실시한 유니폼 수량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아 모두 동났다”며 “같은 기간 판매량은 홈 유니폼(붉은색)보다도 많았다”고 팬들의 반응을 전했다.
K리그 구단들이 유니폼을 통해 팬이나 지역사회와 소통한 사례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2015년의 안산 경찰청(현 아산 무궁화)은 당시 세월호 참사로 침체된 안산 시민에게 위안을 전한단 의미를 담아 ‘We Ansan!(위 안산!)’ 문구를 유니폼 중앙에 달고 경기장에 나섰다. 특히 ‘We’와 ‘An’만 빨간색으로 적어 ‘위안’의 메시지를 팬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프로배구 OK저축은행의 아이디어를 공유해 활용했다. 당시 메인스폰서였던 NH농협은행도 흔쾌히 유니폼 전면 자리를 양보하며 구단 뜻에 힘을 실어줬다.
전북은 현충일 60주년이기도 했던 같은 해 호국영령을 기리는 의미를 담아 진녹색의 디지털 카모플라주 무늬 유니폼을 출시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분들 덕에 우리가 축구를 보고 즐길 수 있단 사실을 팬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헌정 유니폼을 준비했다”는 게 전북이 밝힌 ‘현충일 유니폼’ 제작 이유다.
◇용비늘, 남한산성… 상징 녹인 유니폼들
K리그2 전남 선수들은 팀 명칭 ‘드래곤즈’에서 영감을 얻어 용비늘을 형상화한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노란색과 검은색의 상의 바탕에 용비늘 패턴을 삽입했다. 지역 문화유산을 모티브로 한 유니폼도 있다. 이번 시즌 K리그1으로 돌아온 승격팀 성남은 유니폼 디자인만큼은 우승 후보라는 평가다. 홈 유니폼은 검정과 흰색의 심플한 컬러로 호평 받았고, 원정 유니폼은 성남시의 유적지 남한산성을 형상화한 디자인을 새겨 넣어 디자인과 정체성을 모두 담았다.
이번 시즌 ‘하늘’을 형상화한 유니폼을 걸친 대구는 그야말로 하늘을 걷는 듯한 시즌을 보내고 있다. 홈 유니폼 상의는 파란 하늘을 뜻하는 하늘색으로, 원정 유니폼은 구름을 의미하는 흰 색으로 제작됐다. 경기 내용부터 유니폼까지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의 맨체스터 시티와 닮아 ‘대시티’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다. K리그 유니폼 제작에 처음 뛰어든 업체 ‘포워드’의 성의가 묻어있다는 게 대구 관계자 얘기다. 유명 해외브랜드가 제작한 유니폼만의 장점도 크지만, 국내 기업으로 눈을 돌린다면 구단이 디자인 전문가와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데다 다양한 요구도 유니폼에 충분히 반영된다는 장점을 누릴 수 있단다.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의 해외 구단들은 다양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통해 팬들과 만나고 있다. EPL의 강호 아스널은 1913년부터 사용했던 홈 구장 하이버리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기념하기 위해 100년 전 입었던 유니폼을 재해석한 유니폼을 입고 2005~06 시즌 경기장을 누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12~13 시즌 면직물과 방직 산업으로 유명한 맨체스터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격자무늬의 유니폼을 착용해 두고두고 회자됐다.
리그 차원에서 유니폼을 활용해 인종차별 금지 캠페인을 벌인 사례도 있다.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는 2012~13 시즌 3라운드 경기에서 18개팀 모두 유니폼 상의 앞면에 각 팀의 스폰서 광고 대신 ‘당신의 길을 가라(Geh Deinen Weg)’라는 문구가 새겨진 유니폼을 착용했다. 이 문구엔 인종과 외국인, 동성애 등 세상의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보다 한참 앞선 1992년엔 로스톡에서 인종차별 폭동이 일어나자 ‘내 친구는 외국인(Mein Freund ist Auslander)’라는 문구를 달고 경기에 나서기도 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권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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