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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기자의 고소기] 나는 허지웅의 전 부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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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서 통지서를 받았다. ‘피의자 A, 처분죄명 명예훼손, 구약식(기소)’. 그건 내게는, ‘김지은 한국일보 기자는 방송인 허지웅씨의 전처가 아니다’라는 일종의 증명서나 마찬가지다. 벌써 5년째 나는 인터넷에서 ‘허지웅 전 부인’으로 통하고 있다. 이런 허위사실을 유포한 블로거들을 지난해 10월 고소했고 검찰이 최근 명예훼손 혐의를 인정해 기소했다. 4년 전 첫 고소로도 악몽이 끝나지 않은 결과다.
어느 날 눈 뜨니 허지웅의 전 부인
살면서 한번도 예상하지 못한 낭설의 쓰나미는 2014년 2월 시작됐다. 휴무였던 금요일, 친한 회사 후배에게서 이런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그는 한 블로그의 주소와 함께 “선배, 이런 글이 도는데… 아니죠?”라고 남겼다. 그 블로그에는 ‘방송인 허지웅씨의 전 부인이 김지은 한국일보 기자’라는 사실로 포장한 주장과 기자 칼럼에 쓰인 내 사진까지 버젓이 있었다. 처음엔 ‘뭔 뚱딴지 같은 글이?’ 하며 웃음으로 넘겼다. 그러나 연이어 다른 후배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혹시 제가 몰랐을 수도 있어서, 고민하다 보내요. 이 글이 꽤 확산되고 있어요”란 의문 반, 걱정 반의 메시지였다. 심상찮다 싶었다. 허씨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게다가 난 결혼조차 한 적 없는 사람이다.
알고 보니 허씨가 전날 한 케이블 채널의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전 부인 얘기를 한 모양이었다. 그 이후 흘러간 상황을 짐작하면 이렇다. 온라인 상에서 허씨의 전 부인이 대체 누구냐는 궁금증이 증폭됐고, 일부 블로거들이 관련 검색어를 노려 거짓 글을 쓴 것이다.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허씨의 전 부인과 나는 동명이인일 뿐이다. 허씨의 전 부인과 관련해선, 기자인지 여부는 물론 그 어떤 인적 정보도 알려져 있지 않다. 도대체 어떻게 내가 태어나서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인물과 수년 간 동거도 했고, 결혼식도 했으며, 그러나 혼인신고는 하지 않은 사이가 됐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김지은 기자’는 한국일보뿐 아니라 다른 언론사에도 여럿이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됐다. 나의 명예훼손 고소전은.
내가 택한 최소한의 조치, 고소
고소까지 하기로 결심한 건, ‘블로그’의 엄청난 위력 때문이다. 심지어 나와 십 수년 간 알고 지낸 동료들도 ‘혹시 그간 내가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차마 내게 직접 묻지도 못하고 속으로만 하고 있었다. 기자가 쓴 기사도 아니고 그저 익명의 블로거가 쓴 포스트일 뿐인데도 지인들에게까지 시나브로 사실로 각인된 것이다. 포털사이트 검색으로 나타나는 텍스트의 힘은 생각보다 셌다. 심지어 뒤에서 ‘말은 저렇게 하지만, 맞을 걸. 저런 글들이 그렇게 많은데.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잖아’라고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사람을 만나 취재하고 얘기를 듣는 게 업인 내게는 말할 수 없는 피해이자 고통이며 충격이었다. 게다가 나는 신뢰를 생명이자 무기로 하는 기자다. 취재원이 ‘싱글이라더니 이혼했었어?’란 생각을 하며 나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들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내가 먼저 ‘저 그 김지은 아니에요’라고 ‘양심고백’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에 휩싸였다. 허위사실이 허위임을 증명하려면 법적인 대응 밖에 없었다.
내가 나임을 증명 받기 위한 고소
수많은 종류의 기사를 써봤지만, 고소장이란 글은 처음이었다. 나는 ‘그 김지은’이 아니고, ‘진짜 김지은’, 그저 나일 뿐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고소장, 그리고 내가 ‘그 김지은’이라는 허위사실 때문에 받은 고통을 호소하는 고소장. 생각만해도 스트레스인 글이었다. 일단 증거를 끌어 모아야 했다. ‘허지웅’, ‘김지은’을 검색어로 넣어 나오는 모든 글들을 봤다. 그들은 정성껏 허씨가 전 부인 얘기를 하는 방송 화면 캡처에다, 어디서 찾았는지 그의 청첩장 파일까지 구해 게시했다. 청첩장 속 허씨는 그의 ‘진짜 전 부인’과 가면을 쓴 채 나란히 서 있었다. 블로거들은 그 가면 속 여성이 나라고 주장한 것이었다. 읽는 것조차 괴로운 블로그들을 정독했다. 고소 대상이 될 만한 수준의 글을 가리고 그 글의 어떤 부분이 허위사실이며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 메모했다. 추려낸 글을 일일이 갈무리하고, 주소와 블로거의 닉네임을 정리하고, 고소장에 첨부했다.
4년 전 첫 고소를 하면서 수많은 허위사실 블로그 중 고소 대상을 확정할 때 고려한 건 세 가지다. 단정적인 표현을 쓴 경우, 내 사진을 게시한 경우, 이름과 소속 회사까지 적시한 경우다. 악의적이라고 봐서다. 그렇게 2014년 2월 세 명의 블로거를 최종 고소했고, 같은 해 모두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다.
결국 허지웅과 통화하다
문제는 여파가 첫 고소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로운 허위사실들은 허씨가 이슈가 될 때마다 스멀스멀 온라인에 기어 나왔다. ‘나는 그 김지은이 아닙니다’라고 써 붙이고 다니기라도 해야 하는 건가. 허씨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간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 루머가 퍼져있다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딱히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한 때 고심했던 모양이었다. 전 부인의 이름 역시 ‘김지은’이지만, 왜 김 기자가 전 부인이라는 허위사실이 퍼지게 됐는지 알 수 없다면서. 고민 끝에 내가 한 요청은,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으니 SNS 계정에 이 같은 온라인상의 글들은 사실이 아니며, 그 때문에 당사자가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점을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허씨가 그렇게 루머에 대해 심경을 밝혔다는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여전히 허위사실로 오해할 내용을 제목에 담은 글들이 양산됐다. ‘허지웅 전 부인 김지은 사진 한국일보 기자’,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 허지웅 전처 루머’라고 제목을 다는 식이다. 최근에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고발한 전 비서 김지은씨까지 엮어서 글을 쓰는 자들도 있다. 내가 두 번째 고소를 하고 그 결과도 공개하기로 결심한 한 건 이런 악성 블로그에 계속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다.
미래의 유사 콘텐츠는 어떡하나
더 심각한 건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법적인 대응을 해도 온라인에서 관련 글들을 모두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최소한의 조치로 고소를 해도 수사기관이 피고소인의 인적 정보를 확인하기조차 쉽지 않다. 피의자의 인적 정보를 구글이 갖고 있는 경우엔 미국의 구글 본사가 우리 수사기관의 요청을 거부하면 그만이다. 요즘엔 구글 이메일로 블로그나 유튜브 계정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실제 두 번째 고소사건 수사 때 경찰이 이 때문에 무척 애를 먹었다. 우리 법원에서 압수수색 영장까지 받아 구글 본사에 신원 정보를 요청했지만, 구글 측에서는 거부했다. ‘살인 등 중한 범죄 혐의가 아닌 명예훼손 정도의 혐의로 신원 정보를 줄 수는 없다’는 요지의 회신이 왔다고 한다. 영장을 신청하고, 발부된 영장을 영문으로 번역해 보내고 답변을 받기까지 시간은 또 얼마나 오래 걸렸나. 그러고도 일부 피의자는 신원조차 확보하지 못했으니 경찰로서도 무척 허탈한 일이었다. 내가 고소한 블로거와 유튜브 운영자는 9명이었지만, 이 중 신원이 확인된 건 1명뿐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다른 블로그 2개에 허위사실을 적시한 동일 운영자였다.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기소유예 처리됐다. 허위사실을 올려 입는 피해는 인터넷과 SNS가 존재하는 한 지속될 텐데, 처벌은 이렇게 어렵다.
포털에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콘텐츠를 검색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게시 중단 요청’이란 제도가 있지만, 이것도 만능은 아니다. 일단 포털에 게시 중단 요청을 하려면, 고소장을 쓰는 것과 비슷하게 일일이 증거 자료를 수집, 첨부해 이유와 함께 접수해야 한다. 통상 4, 5단계의 과정을 거친다. 처음에는 이런 서비스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 수사기관의 도움으로 알게 됐지만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찾는 것도 어려웠다. 포털의 메인 화면에서 스크롤을 바닥까지 내려 ‘고객센터’ 코너를 클릭하면 메뉴 중 하나로 나온다.
그러나 이 서비스도 이미 생성된 게시물에만 해당한다. 미래에 무수히 나올 수 있는 유사 콘텐츠는 제한 할 수 없다. 피해자는 매일 명예훼손성 글을 검색해 게시 중단 요청을 해야 할 노릇이다. 구글이나 유튜브는 어찌할 방법도 없다. 심지어 요즘은 유튜브 이용률이 높아진 것을 노려, 텍스트를 활용한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하는 이들도 늘고 있는 추세다. 두 번째 고소 때 나도 당했다.
‘연관 검색어’도 나를 괴롭힌 포털의 기능 중 하나다. ‘허지웅’을 치면 ‘한국일보 김지은 기자’가, ‘한국일보’를 치면 ‘허지웅’, ‘김지은’이 연관 검색어로 뜨곤 했다. 이것만 보고 기정 사실로 아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런 점들은 법적ㆍ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다. 허위사실이 온라인과 SNS로 퍼져 받는 고통을 생각하면 포털과 국회가 나서야 한다. 경찰은 블로그나 SNS에 가입할 때 반드시 실명 인증을 거치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수사기관이 범죄 혐의로 해외 사이트에 인적 정보를 요청할 때 상호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맺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익명에 기댄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는 확산되는데, 피의자를 특정하기조차 어려우니 수사기관의 고충도 크다.
누구나 쉽게 온라인에 글을 쓸 수 있게 된 시대다. 누구나 피해자 역시 될 수 있다. 나도 내가 이런 일을 당할 줄 몰랐다. 블로그 혹은 SNS에 글을 쓰는 이들은 그래서 자신이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둬야 한다. 측량조차 어려운 유속으로 흐르는 정보의 바다에 자신의 글을 떨어뜨릴 때 생길 수 있는 파장을 그는 알까. 이렇게 하고도 아마 나는 앞으로도 수없이 “허지웅 전 부인 아니었어?”라며 나를 당황스럽고 황당하게 만드는 일들을 겪을 것이다. 또 유사한 콘텐츠가 나올 때마다 고소를 할 것이다. 그래도 이 ‘고소기’로 적어도, 생각 없이 거짓을 사실인양 블로그나 SNS에 올려대는 사람들이나, 이런 고소기조차 ‘낚시’ 기사로 만들어 클릭을 유인할 생각을 할 일부 인터넷 매체들이 한번쯤은 그 글이 칼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보게 되기를. 여러 위험과 우려를 무릅쓰고 내가 나의 사건을 들춘 이유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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