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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필리스 슐래플리(9월 5일)

입력
2017.09.05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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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수정치운동의 '퍼스트레이디' 필리스 슐래플리.eagle forum.
미국 보수정치운동의 '퍼스트레이디' 필리스 슐래플리.eagle forum.

필리스 슐래플리(Phyllis Schlafly)는 1950년대 반공주의서부터, 60ㆍ70년대 반페미니즘ㆍ반자유주의, 근년의 반동성애ㆍ반이민 캠페인과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운동까지, 대중적으로 막강한 자성을 발휘하며 미국 보수 정치운동의 ‘퍼스트 레이디’라 불렸다. 자유주의 정치학자 앨런 울프(Alan Wolfe)가 “20세기 후반 50년 동안 가장 중요한 미국인 2, 3명을 꼽을 경우 그 중 한 명이 그여야 한다”고 했던 슐래플리가 1년 전 오늘(9월 5일), 92세로 별세했다.

그는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기계 세일즈맨이던 아버지가 대공황 직후 실직한 뒤 어머니가 백화점 점원, 교사, 사서 등으로 일해 가족을 부양했다. 슐래플리는 워싱턴대를 3년 만에 우등 졸업하고 래드클리프 여대(하버드대와 통합)에서 9개월 만에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꿈은 연방 공무원이었지만 여의치 않자 46년 고향으로 돌아와 연방 하원의원 선거캠프에 가담하며 정치를 시작했다.

직업 정치인으로서의 운은 박했다. 52년과 70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했고, 67년 공화당 전국여성위원회 위원장 선거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60년대 민권운동과 히피 열풍을 ‘혼란’으로 여긴 보수층이 적지 않았다. ‘극우 선언서’라 불리는 그의 64년 저서 ‘메아리가 아닌 선택 A Choice not an Echo’은 300만 부가 팔려나갔다.

그렇게, 그의 영향력은 당내에서보다 거리에서 꽃을 피웠다. 그는 글, 강연, 방송 등을 통해 거의 모든 정치 현안에 개입했다. 대표적인 게 70년대의 평등권 수정헌법(Equal Rights Amendment) 찬반 대립이었다. 법이 보장한 평등권을 성별로 부인하거나 침해할 수 없도록 한 수정조항은 72년 6월 연방 상ㆍ하원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가결됐지만, 비준에 필요한 주 의회 비준 최저선(최소38개 주)을 확보하지 못해 82년 폐기됐다. 그는 72년 ‘STOP ERA’(이글 포럼의 전신)라는 단체를 만들어 반대운동의 중심에 섰다.

아내이자 엄마로서 6남매를 키운 것을 자랑스러워했던 그는 강연을 할 때도 행사 참석을 허락해 준 남편에 대한 감사 인사로 시작하곤 했다. 앙숙이던 베티 프리던은 그를 ‘엉클 톰’에 빗대 ‘앤트 톰(Aunt Tom)’이라 불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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