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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2002년 박근혜 신당 '미래연합'에도 관여했다"

입력
2016.10.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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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사무실 삼성동에 있어

삼성연구소 소장으로 불리며

문고리 4인방 종 부리 듯”

유승민 “연설문 써드렸더니

완전히 다른 연설한 경우 있어”

2007년 경선서도 영향력 의혹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당시 최순실씨의 남편인 정윤회씨가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다. 한국일보자료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당시 최순실씨의 남편인 정윤회씨가 총재 비서실장을 맡았다. 한국일보자료사진

국정농단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최순실(60ㆍ최서원으로 개명)씨가 2002년 박근혜 대통령이 창당했던 한국미래연합(미래연합)에도 관여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을 때와 2012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지휘했던 총선 때도 최씨가 배후에서 개입했을 것이라는 증언도 터져 나오고 있다. 최씨가 비선실세로 국정에 관여할 수 있었던 것은 박 대통령의 의정활동 초기부터 근거리에서 정치적인 조언을 해왔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고리 보좌진, 최씨를 ‘소장님’이라 불러”

미래연합은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재선의원이던 2002년 당시 이회창 총재를 “제왕적”이라고 비판하며 탈당해 만든 신당이다. 미래연합에 몸 담았던 한 인사에 따르면, 최씨는 당시 ‘삼성연구소 소장’으로 불렸다. 이 인사는 30일 본보와 통화에서 “최씨가 창당 준비모임은 물론 창당 뒤에는 당사에도 나와 이른바 (고 이춘상 보좌관까지 포함해) ‘문고리 4인방’을 종 부리듯 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최씨의 행동을 의아스럽게 여겨 보좌진에게 “대체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삼성연구소 최순실 소장”이라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 인사는 “대기업 삼성과 연관이 있는 게 아니라 당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던 박 대통령의 개인사무실을 뜻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 무렵 최씨의 남편이었던 정윤회씨는 미래연합 총재이던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이 인사는 “알고 보니 (당시) 정 실장이 아니라 최씨가 왕이었던 것”이라며 “그때부터 박 대통령 곁에 있었으니 지금은 권력이 얼마나 막강해졌겠느냐”고 말했다. 최씨는 창당 후 미래연합 사무실에도 자주 나왔지만, 당 관계자들 사이에 소문이 돌자 얼마 뒤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비춰 ‘삼성연구소’는 훗날 2007년 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의 비선 외곽조직으로 알려진 ‘강남사무실’과 같은 곳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한 의원은 “나중에 알고 보니 여의도 국회 앞의 캠프 사무실은 언론용이었고, 박 대통령은 강남사무실에 상주했다”며 “그 강남사무실이 삼성연구소였고 그 곳 지휘를 최씨가 했었던 것 같다”고 짐작했다. 당시 캠프에서 활동했던 여권 인사 사이에는 “문고리 4인방이 갑자기 서류 가방을 들고 사라져지곤 해 대체 어디를 가나 했는데 강남사무실 간다고 하더라”, “중요한 결정은 사실상 강남사무실에서 정해져 하달됐고 캠프 공식회의 결정조차 번복된 경우도 있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2005년 11월 당시 박근혜(오른쪽) 한나라당 대표와 ‘원조 친박’ 유승민 비서실장이 의원총회를 마친 뒤 대표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 기자
2005년 11월 당시 박근혜(오른쪽) 한나라당 대표와 ‘원조 친박’ 유승민 비서실장이 의원총회를 마친 뒤 대표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대근 기자

“2007년 경선 ‘진짜 캠프’는 최씨의 ‘강남사무실’”

당시 박 대통령은 때로 캠프에서 준비한 연설문이 아닌 걸 읽기도 했다. 그 때 연설문은 지금은 비박계지만 당시엔 정책ㆍ메시지 총괄단장으로 핵심 친박이었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썼다. 유 의원은 본보 통화에서 “미리 (후보에게) 연설문을 써드렸는데 완전히 다른 연설을 한 경우가 있긴 했다”며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출마 선언문이 그랬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그 연설문의 출처가 어딘지는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알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전여옥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유 의원이 쓴 연설문이 모처에 다녀오고 나면 걸레가 돼 돌아왔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많이 과장됐다”고 유 의원은 말했다.

이 밖에 2012년 박 대통령이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치렀던 19대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최씨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당시 선거대책위원회 핵심이었던 한 여권 인사는 “비대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선대위에서 정한 공식 선거운동 일정을 무시하고 외부에서 짠 듯한 일정으로 지원유세를 다녀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이 많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선대위 핵심 인사는 “박 대통령이 불과 몇 십 분 뒤 이유조차 말하지 않고 지시를 뒤집어 의아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아마도 최씨가 개입했던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박 대통령의 힘이 막강했던 19대 총선 공천은 물론 20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최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어,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도 있다. 김지은 기자 lun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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