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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적’이 합작해낸 '태후' 이변

입력
2016.04.1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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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태양의 후예'를 만든 김은숙 작가(왼쪽)와 이응복 PD. KBS 제공
KBS2 '태양의 후예'를 만든 김은숙 작가(왼쪽)와 이응복 PD. KBS 제공

시청률 30%를 웃돌며 인기 몰이중인 KBS2 수목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만든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의 인연은 남다르다. 둘은 한 때 같은 시간대에 치열한 시청률 경쟁을 벌이며 울고 웃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경쟁자로 맞붙은 건 2013년이다. 김 작가는 청춘 스타인 이민호와 박신혜를 앞세워 SBS 드라마 ‘상속자들’을 꾸렸지만, 초반에 빛을 보지 못했다. 김 작가의 앞을 막은 건 이 PD였다. 그는 유보라ㆍ최호철 두 신인 작가가 쓴 KBS2 드라마 ‘비밀’로 ‘상속자들’을 제치고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상속자들’은 ‘비밀’이 전파를 탄 10월9일부터 11월14일까지 12번 대결을 펼쳐 한 번도 ‘비밀’의 시청률을 넘지 못했다. ‘상속자들’이 ‘비밀’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서 시청률 20%를 넘어서며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이 PD는 대중적인 히트작을 낸 유명 연출자도 아니었다. 그가 만든 드라마 가운데 화제가 된 작품은 시청률 10%대를 기록한 ‘드림하이’(2011)정도였다. 당연히 ‘상속자들’과 ‘비밀’이 맞붙기 전까지만 해도 방송가의 관심은 ‘상속자들’에 쏠렸다. 김 작가뿐 아니라 ‘올인’(2003) 같은 대작을 연출한 강신효 PD와 청춘 스타들도 참여한 기대작이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당시 톱스타도 스타 작가도 없는 ‘비밀’이 ‘상속자들’을 제치고 수목극 시청률 왕좌를 차지하자 방송 관계자들도 깜짝 놀랐다. 이변 연출에는 이 PD의 공이 컸다. 세련된 연출력으로 자칫 진부할 수 있는 멜로드라마에 호기심을 자아냈다. 그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얼룩이 지는 드라마 타이틀 로고에서부터 잘린 케이크에 하트 조각이 조각 나는 걸 카메라에 담아 불안을 암시하는 식으로, 장면에 의미를 담아 ‘복테일’이라 불렸다. ‘비밀’을 좋아했던 네티즌이 이 PD의 이름 끝 자와 섬세하다는 뜻의 영어 디테일(Detail)을 합쳐 붙인 별명이다.

‘과거의 적’이 다시 만난 건 2014년 말이다. 김 작가가 쓴 ‘태양의 후예’가 SBS 편성이 무산되고 KBS로 넘어오면서다. 2003년 ‘태양의 남쪽’으로 시작해 ‘파리의 연인’(2004), ‘온에어’(2008), ‘시크릿 가든’(2010), ‘신사의 품격’(2012) 등 줄곧 SBS와만 일해왔던 김 작가가 타 방송사와 손을 잡기는 ‘태양의 후예’가 처음이었다.

12일 KBS 드라마국 관계자에 따르면 내부 논의를 거쳐 이 PD를 김 작가의 ‘태양의 후예’ 연출로 정했다. 이 PD와 함께 백상훈 PD도 드라마에 투입했다. 공교롭게 둘 다 ‘비밀’을 연출했던 PD들이었다. ‘과거의 적’이 ‘동지’로 만나게 된 것이다. 한 방송관계자는 “김 작가가 KBS로 건너오면서 ‘비밀’ 팀과 제작을 원한 걸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태양의 후예’의 한 관계자는 “김 작가가 따로 요청한 건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나, 김 작가와 이 PD는 첫 작업부터 기대 이상의 합을 보여줬다. 이 PD와 김 작가를 아는 한 관계자는 “이 PD는 차분하면서도 냉철하게 이야기를 파고 드는 측면이 있고, 김 작가는 그 반대라 겉돌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다른 (성격의) 두 사람이 만나 시너지를 낸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작가와 이 PD는 ‘태양의 후예’를 계기로 좀 더 가까운 파트너로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다. 여러 방송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PD는 ‘태양의 후예’를 끝낸 뒤 KBS를 떠나 새로운 일터에서 일하는 걸 고민하고 있다. 김 작가가 몸 담고 있는 화앤담픽처스가 그의 새 둥지로 거론되고 있다. 만약 이 PD의 이적이 이뤄지면 김 작가의 신작 ‘도깨비’(가제)에 그가 투입될 가능성도 있다. ‘태양의 후예’를 끝낸 김 작가는 올해 연말 방송을 목표로 ‘도깨비’를 준비하고 있다. 편성은 케이블채널 tvN이 유력하다. 화앤담픽처스는 지난 1월 CJ E&M에 인수합병됐다. 이적설과 관련해 이 PD는 아직까지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KBS 드라마국 관계자는 “이 PD는 사표를 내지 않았다”며 이적설을 부인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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