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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회를 먹으니 진짜 회식이네요 하하” 달라진 안철수 화법

입력
2015.12.20 11:38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17일 광주 동구 광주은행 본점을 방문해 은행 내 성탄절 기념 전시관에서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한 안철수 의원이 17일 광주 동구 광주은행 본점을 방문해 은행 내 성탄절 기념 전시관에서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의원이 확 달라졌습니다. 공식석상에서 정석적인 단어와 흐트러짐 없는 화법을 구사하던 그가 지난 12일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이후 직설적 비유와 단호한 어조로 수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안 의원은 비공식 석상에서도 조금 더 여유 있게 농담을 구사하며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측근 그룹에서조차 “탈당 전 안철수가 진짜냐 지금의 안철수가 진짜냐”라는 반응까지 나올 정도니, 그가 변했다는 것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안철수라는 개인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MBC 인기예능프로였던 ‘무릎팍 도사’를 통해 형성된 ‘진솔하고 유연한’ 모습과 정치 입문 이후 보여준 ‘딱딱하지만 과거 정치인과 뭔가 다른’ 이질적 분위기가 그 것이었습니다. 이 두 이미지는 지난 대선 전 강력하게 화학작용을 일으켜 그를 유력 대권 후보로 만든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대선 이후에는 ‘좋은 사람이긴 한데 뭔가 임팩트가 없고 눈치만 본다’는 모호함을 그에게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직업 정치인의 그 어떤 ‘정형성’과 안 의원 이미지가 접점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되는 부분입니다.

따지고 보면, 안 의원의 변화는 최근 탈당 직전까지 그가 주도했던 새정치연합 혁신 논쟁 때부터 미묘하게 감지됐습니다. 선 긋기를 주저하고 타인을 비방하는 데 익숙하지 않던 그가 당내 주류 세력을 향해 지난 9월과 10월 연이어 “낡은 진보를 바꿔야 한다”고 날을 세우기 시작한 것 입니다. 자신의 입장을 주로 일요일에 발표해 ‘일요일의 남자’로 불렸던 그는 기자회견 직후 이어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도 모호한 말 대신 “그건 문재인 대표가 말해야 할 부분이다”, “어떤 직책을 맡겠다는 게 아니다. 먼저 (당 지도부가) 어떻게 수용할지 밝히면 나도 말하겠다”는 비교적 구체성이 답보된 답변들을 내놓았습니다. “다음에 이야기 하시죠”로 대변되던 그의 화법에 변화가 감지된 시점이었습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안 의원 화법은 문 대표와의 당 주도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강했습니다. 그러나 안 의원은 지난 달 29일 문안박 연대를 거부한 다음 날 광주를 찾아 자신을 ‘간철수’가 아닌 ‘강(强)철수’라 주창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대외적으로 예고했습니다. 친숙한 기존의 두 이미지를 버리고 강한 정치인의 화법을 본격적으로 구사하기로 결심했다는 것을 알린 셈입니다.

이후 그는 지난 13일 탈당이라는 강수를 던졌고, 15일과 17~18일 각각 부산과 광주를 방문합니다. 그리고 두 도시에서 그는 자신의 친정을 “냄비 속 개구리”, “야당만 하기로 작정한 당”(부산)으로, “과거처럼 호남에서 안(安)풍이 불 수 있도록 보여주겠다”(광주)는 식의 직설적 표현을 구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표현뿐 아니라 어조도 변했습니다. 새정치연합에 소속됐을 당시 “미래의 일을 지금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며 조곤조곤 말했던 것과 달리, “‘탈당에 따른 어부지리로 새누리당이 승리하면 정치적 책임을 지겠냐’고 (나를) 비판하는데, 결과에 대해선 책임질 것”(광주)이라고 단호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석에서 안 의원 발언도 달라졌습니다. 과거 친분이 있는 기자들과 소규모로 식사할 때나 가끔 나오던 그의 농담이 공식 일정 내내 이어진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17일 광주 공식 일정을 마치고 식사 중이던 기자단 저녁 식사 자리도 먼저 찾아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저녁 식사 메뉴에 회가 있는 것을 보더니 “이야. 여긴 회를 진짜 먹고 있으니 진짜 회식이네요. 하하. 아휴 썰렁해라”고 농담을 건네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어 자신과 안면이 있는 기자들에겐 “A 기자님은 여기까지 오실 짬밥이 아닐 텐데, (저 때문에) 고생이십니다”, “B기자님은 광주 담당, C기자님은 부산 담당이신가 봐요. 15일엔 C기자님이 오시더니…”라고 구체적인 관심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 같은 사석에서의 대화는 당직을 오래 거쳐 기자들이 익숙한 다선 의원들에게 종종 나오는 그림입니다. 그는 분명 이날 전까지 ‘기자들이 익숙한’ 정치인은 분명 아니었습니다.

안 의원은 회식(?) 자리에서 최근 자신의 달라진 화법을 ‘간절함’ 때문이라 설명했습니다. 합석한 기자가 ‘탈당 이후 오늘까지 워딩을 보면 당에 있을 때보다 발언의 의지가 뚜렷해 보인다. 의도한 건지 원래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냐’는 질문에 “(당 내 있었을 때) 원래 생각했던 문제의식이 지금 좀 더 간절해진 것”이라며 “(강하게 발언하는 것이) 지금 국민에게 도움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러고 있습니다”고 답했습니다.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강경 발언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얘기인 셈입니다. 그의 주변 인사들의 진술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안 의원의 한 측근은 “(안 의원이) 당을 떠난 이후 기존 메시지팀에서 주는 글을 읽지 않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현장에서 자유롭게 하고 싶어 하는 의지가 강하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안 의원의 달라진 화법을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그의 기존 ‘간철수’ 이미지가 탈당 이후 이어진 며칠 동안의 강경 발언만으로 깨지긴 어려워 보입니다. 또 시점 상 화법 변화가 탈당 이후 ‘존재감 확보하기’ 차원의 접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안 의원이 변한 자신의 말들을 진정성 있게 행동으로 이어간다면, 어느 순간에선 국민들이 긍정적으로 화답할 것으로는 예상됩니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가려 듣고 지지자층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는 구악(舊惡) 정치인보다는,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해야 할 말을 단호히 하는 새정치인이 필요한 시대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정재호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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