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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뉴스] ‘문학정치’로 새삼 화제 되는 독서광 문재인

입력
2015.12.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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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문학(文學) 정치’가 새삼 화제입니다. 문 대표는 지난 13일 안철수 의원의 탈당 기자회견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렸습니다.

시인이자 새정치연합 비례대표인 도종환 의원의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에 실린 글 ‘파도 한 가운데로 배를 몰고 들어가라’ 였습니다. 우리나라 기상 관측 이래 가장 강한 바람(순간 최대 풍속 58.3m)이 불었던 태풍 ‘프라피룬’이 몰아쳤을 때, 죽음의 늪 한가운데로 배를 타고 나갔다가 태풍이 빠져나간 뒤 무사히 살아 돌아온 한 고흥산 노인의 얘기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고 노인은 강풍과 파도를 바라보다 해두호를 이끌고 바다로 나갔다. 15m가 넘는 파도 속으로 3톤짜리 작은 목선을 끌고 나가다니, 그건 죽음의 늪 한가운데로 눈을 감고 걸어 들어가는 것이나 한가지였다. 그러나 고 노인은 이런 파도는 배를 방파제 옆에 끌어다 놓아도 부서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고 노인은 파도가 몰려오면 정면으로 배를 몰고 들어갔다.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한 순간에 배가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파도가 몰아치면 배는 하늘로 솟구쳤다가 다시 수직으로 떨어지곤 했다. 그렇게 10시간 가까이를 파도와 싸웠다. 그러는 사이 파도는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육지로 피신시킨 30척의 배들이 부수어 버렸다. 40톤급 배 두 척도 들어 내동댕이친 엄청난 파도였다. 저녁 무렵 태풍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거도 앞바다를 빠져 나갔고, 고 노인은 배를 항구 쪽으로 몰고 왔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복지후퇴 저지'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원순 서울시장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이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 복지후퇴 저지'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표는 글 속의 고흥산 노인에 자신을 빗댔습니다. 안 의원의 탈당으로 당이 ‘누란지위’의 상황이 될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것이며 결국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문 대표는 앞서 안 의원이 탈당 전 ‘혁신전당대회’를 재차 요구하며 ‘최후통첩’을 했던 6일에는 고정희 시인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의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라는 시구를 통해 어떤 역경에도 꿋꿋하게 내 길을 가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렇듯 최근 문 대표는 중요한 결단의 시기에 자신의 심경을 시나 산문 등 문학 작품을 인용해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해졌습니다. 이렇듯 자신의 심경을 드러내는 작품과 글귀를 문 대표가 고를까였습니다. 문 대표 수행팀, 보좌진 여러 명에게 물었습니다. 답은 똑같았습니다. 문 대표가 직접 고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문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을 올리는 것도 짧은 글은 이동 중에, 다소 긴 글은 집이나 사무실 컴퓨터로 올린다고 합니다. 가끔 오자가 나오는 것도 본인이 직접 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새삼 문 대표의 독서량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문 대표는 상당한 독서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읽을거리가 많지 않았던 초등학교 때 3살 위 누나의 교과서까지 읽었고, 중학생 땐 몇 개월 동안 도서관이 끝날 때 의자 정리까지 해주고 나올 정도로 책을 많이 봤다고 합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많은 문화계 인사들도 문 대표와 대화를 나누면 그의 상당한 독서량에 놀랐다는 얘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동 중이나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근 읽는 책들을 물었더니, 이철수의 ‘연작 판화집’, 장하성 교수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 정대영 송현경제연구소장의 ‘한국 경제 대안 찾기’ 등 여러 분야 책을 동시에 읽고 있다고 합니다. 문 대표에게 그 책을 어떻게 구해서 읽는지를 물었습니다. 부산 변호사 시절에는 서점 가서 직접 책 구경하며 책 샀다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뒤 서울에 올라온 이후에는 인터넷 서점에 주문해 구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저자나 지지자들이 보내 주는 책이 많이 밀려 있어 따로 구입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앞으로도 문 대표의 ‘문학정치’는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주로 절박함 속에서도 갈 길을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을 위한 ‘비장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언젠가는 밝고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나 시구를 볼 수 있을지 당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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