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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졸렬한 ‘찍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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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도 희망퇴직 시키는 대기업
노동개혁 쉬운 해고 무기 될 수 있어
감원은 위기 극복의 최후 수단이어야
우회로가 있다면 연말은 직장인들에게 돌아 가고 싶은 계절이다. 불황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우고 경기가 더 어려우리라는 전망이 나올 때면 더 그렇다. 다행히 자리를 보전한다 해도 안도는 한 순간일 뿐, 불안은 늘 심장을 후벼 판다. 연말 모임 자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섣불리 “잘 지내냐”“요즘 뭐해”라고 안부를 묻지 못한다. “명함 좀 줘”라는 말은 금기어다. 서로의 안부나 소식은, 당사자가 본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는, 귀동냥에 의지해야 한다. 계속되는 재계의 감원 바람은 연말 모임을 그렇게 얼어붙게 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출은 예고된 것이기에 대화 소재로 삼기가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그것이 개인의 능력이나 성과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경제ㆍ사회 구조가 낳은 결과라는 공통된 인식이 대화의 부담을 덜어주는 영향도 있다. 그러나 올해 연말은 정말 심각하다.
기업들의 감원 회오리가 베이비붐 세대, 사오정(45세 정년)을 넘어 2030 세대까지 덮쳤다. 한국 경제의 위기 상황이 젊은 직장인들까지 거리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 어렵게 단 자랑스런 회사 배지를 떼내야 하는 그들의 절망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기업들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수출 실적 하락, 중국에 추격 당하고 있는 산업 현실 등 대내외 환경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어 생존 차원의 감원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틀린 이야기도 아니고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과연 신입사원에게까지 희망퇴직의 굴레를 씌우는 행위가 타당한 것인지, 기업 생존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 조치인지 의문이다. 알짜배기 사업이나 핵심 자산까지도 매각하거나 사업 체질 개선, 원가 절감 같은 모든 경영적 조치를 다한 뒤에 최후의 수단으로서 감원을 선택한 것인지도 의심스럽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신입사원 퇴출 파동을 보면 기업에 대한 이러한 의구심이 한층 깊어진다. 두산인프라코어 경영 악화의 근본 원인은 잘못된 경영 판단에 있다. 수 조원의 돈을 빌려 미국 중장비 업체를 인수한 게 화근이 됐다. 그 빚을 갚느라 지금도 허덕이고 있다. 그 판단과 결정은 오너를 비롯한 최고경영진이 했다. 하지만 그 책임과 피해는 회사가 콕 찍어 퇴출시킨다는 ‘찍퇴’의 수모를 당한 젊은 사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오너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더라도 그들이 필사의 노력을 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한겨레가 기업공시 내용을 분석한 결과, 두산인프라코어는 ‘두산’브랜드 사용료로 ㈜두산에 연평균 134억원을, 전산시스템 구축ㆍ운영 비용으로 한해 540억원을 지불하고 있다. 그리고 ㈜두산은 지난해 44.05%의 지분을 보유한 오너 일가를 위해 이익보다 많은 827억원의 현금 배당을 실시했다. 이러고도 감원 카드를 꺼내는 것은 모럴헤저드의 극치다. 어떻게 그 동안 국민들에게 ‘사람이 미래다’라고 뻔뻔하게 외칠 수 있었는지 기가 막히다.
이런 이중성이 비단 두산만의 현상은 아닐 것이다. 경영의 부조리와 비합리의 군더더기를 걷어내고 오너부터 제 살을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은 채 제 이익 챙기기에 골몰하며 감원이라는 손쉬운 카드를 남발하는 것이 기업의 공식이 돼버렸다면 이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희극이자 비극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노동개혁을 명분으로 더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하려는데 있다. 정부 계획대로 일반해고 요건과 취업규칙 변경 완화가 법 개정이 아닌 행정지침 마련만으로 시행된다면 기업이 쥔 감원 칼날의 서슬은 더 퍼레질 게 자명하다. 희망퇴직을 압박하는 번거로운 절차조차 필요 없이 대상자를 저성과자로 만들어 버리면 언제든 해고가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노동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정부는 청년 일자리 창출을 외치며 청년희망펀드에 수십억씩 기부하면서 한편으론 졸렬한 찍퇴의 칼날을 신입사원들에게까지 들이대는 기업의 이율배반부터 먼저 해소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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