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편집국에서]역사는 누구를 기억하는가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1년 수삼개월 전 당권 도전으로 고민하는 문재인 의원을 향해 ‘전면에 나서라’(2014년8월25일자 편집국에서)고 조언한 적이 있다. “문 의원이 진정 차기 대선에 의지를 갖고 있다면 비상의 상황인 지금, 아니면 최단의 비대위 체제 직후에 곧바로 당을 책임지고 운영해 봐야 한다”고 썼는데, 문 의원은 몇 개월 뒤에 진짜로 전당대회 대표경선에 출마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올해 2월 전당대회에서 그는 (그리 놀랍지 않게)대표에 당선됐다.
그 뒤로 조마조마했던 게 사실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형극(荊棘)의 길로 문 대표의 등을 떠민 건 아닌가’라는 일종의 부채의식 때문에 ‘애프터서비스라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4월 재보선에서 참패했을 때와 혁신안 문제로 ‘문안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 9월쯤에는 괜히 미안한 감정마저 들었다.
최근 안철수 의원과 공방을 주고 받을 때는 안타깝고 답답했다. 총선을 4개월 앞두고 전당대회를 주장하는 안 의원의 요구는 분명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전당대회를 거부한 문 대표의 판단과 결정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분열의 길로 가고 있는 안 의원을 대하는 모습에서는 진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탈당 기자회견을 예고한 날 새벽 안 의원 자택을 찾는 장면에서는 문전박대를 연출하는 ‘희생자 코스프레’의 냄새마저 짙었다. 좀 더 진지하게 안 의원의 말을 듣고 겸허하게 상황에 대처할 수는 없었을까라는 아쉬움이 여전하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다지만, 만약 문 대표가 안 의원의 사퇴 요구를 대승적으로 수용하고 모든 권한을 내려놓았으면 어땠을까. 야권, 특히 주류들은 문 대표 아니면 당을 이끌 지도자가 누구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총선을 비대위 체제로 치른 사례는 여야를 막론하고 적지 않다. 문 대표는 머리 속으로 ‘비대위 구성부터 난항을 겪지는 않을까’ ‘비대위가 출범한다 해도 공천을 두고 계파갈등이 개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을까’라는 숱한 걱정과 고민을 했을 수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문 대표가 모든 것은 내려놓는 순간, 안철수 의원의 옹졸함은 더욱 부각될 것이고 새정치연합은 극도의 위기감으로 그야말로 비상의 대책을 마련하느라 분주했을 것이다. 문 대표 스스로는 결단과 양보의 아이콘으로 부상하는 망외(望外)의 소득을 얻었을 게 분명하다. 역사는 1987년 민주화 국면에서 DJ와 YS를 벼랑 끝 정치의 선구자로 기록했고, 2011년 서울시장 재보선 때는 양보의 미덕을 보인 안철수를 대선 주자급으로 부상시킨 전례가 있다.
안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던 13일 문 대표는 급기야 “정치가 싫다”고 했다. 당 안팎의 소란을 향해 “진저리가 난다” “지긋지긋하다”던 그는 고향 부산에서 1박2일의 정국 구상을 마쳤다. 사석에서 “세상에서 정치가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는 점에 비춰보면 진퇴마저 저울질했을지도 모르겠다.
문 대표의 고민이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감히 문 대표에게 조언을 한다면 측근들에게 갇히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라는 말을 건네고 싶다. 그러면서 상식의 범주에서 일반인들조차 기대고 의지하는 몇 가지 생활 지침을 권한다. ①내려놓는 순간 새로운 길이 열린다 ②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③내가 없다고 회사(또는 조직)가 돌아가지 않는다(또는 망한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개인적으로 절감하는 삶의 지침인데 정치권이라고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말로 문 대표는 왜 정치를 하는지, 야권이 무슨 요구를 하는지를 심각히 자문해 봐야 할 때다. 그래서 집착과 욕망이라는 결론에 도달할라치면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 그 순간, 새로운 길과 새로운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대체로 때를 놓쳤다고 주저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늦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리디우스의 매듭을 자르지 못하면 영영 후회하게 된다. 또 야당에는 문 대표 말고도 많은 주자들이 줄을 서 있다.
김정곤 정치부장 jkkim@hankookilbo.com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