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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칼럼] 그래도 안철수를 이해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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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뻔히 알면서 왜 그 길로 갔을까
어차피 야당의 파괴적 혁신 필요한 때
새정치 단초도 못 만들면 역사의 죄인
바로 지난 번 이 칼럼란(欄)에서 “한번 철저하게 깨지는 일밖에 남은 게 없다”라고 썼더니 정말 그 길로 갔다. 물론 그리 가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면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나라는 더 기울어질 터이니, 그런 ‘시대의 죄’를 감당할 자신이 있다면 자기파괴의 길을 가도 좋다고 했다. 그런데도 안철수는 뛰쳐나갔고, 문재인은 붙들지 못했다.
지금 누구 잘못이 더 큰지를 따지는 건 부질없다. 누가 누구와 어떻게 합종연횡할지 복잡하게 전망하는 것은 더 쓸모 없는 일이다. 어차피 본질은 공천장사를 위한 저들만의 게임이므로. 먹고 살 걱정 없는 호사가가 아닌 다음에야 대다수 국민은 이 따위 정치게임에 한가하게 휘둘릴 여유가 없다.
정부 여당이 워낙 막무가내인데다 힘도 압도적이어서 차마 약소한 야당에는 모질게 대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이쯤에야 말하자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 오래 전부터 이미 제1야당으로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생존시효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봤다. 문재인의 집착과 안철수의 몽니가 임종시기를 좀더 앞당긴 것뿐이다.
정당도 변하지 않으면 죽게 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우리 야당은 사반세기 가깝도록 거의 변하지 않았다. 고답적 원론을 다시 들추자면 정당은 여론을 집약 표출하고, 궁극적으로는 권력의 확대와 획득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집합체다. 그 과정에서 복잡다기한 이해를 조정하고 정부를 견제하면서 결국 사회통합과 공공이익의 극대화를 도모하는 것이 그 존재이유다.
그러나 우리 야당은 이해 조정보다는 반대 목소리에 얹혀갈 기회만 찾았고 이걸 견제인양 착각해왔다. 시대착오적 배타와 독설, 선명성 따위를 여전히 야당다움으로 믿고, 협소한 지역기반에 안주해 공공이익과는 상관없는 파벌놀음으로 지새웠다. 시대를 선도해 이끄는 어떤 모습도 보여준 기억이 없다. 단 한 번, 노무현만이 독자적인 가치를 앞서 표방하면서 집권에 성공했을 뿐이다. 다만 정부 실정에 정체성을 기대어 연명하는 야당의 모습이 전형적인 기생정당 그대로라면 너무 잔인한가?
독일 정치학자 키르크하이머가 서구정당들의 선진적 변화를 포착한 게 반세기 전이다. 계급대립이 약화하면서 이념과 신념의 중요성도 낮아지고, 극렬한 반대만 일삼는 태도가 완화하며, 특정계급에 기반한 정체성에 집착하기 보다 사회 전체시스템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어가고 있다는. 그런데 지금 우리 정당, 특히 야당은 어떤가.
아직도 안철수의 ‘새정치’가 뭔지, 혁신이 뭔지 모르겠다. 굳이 이해하려 들자면 이런 근본적 혁신 욕구가 워낙 컸던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나하나 뜯어고치자니 문제가 너무 많고 감당불능이어서 아예 다 때려치우고 직접 모델을 만들어보겠다는. 원래 할 말이 지나치게 많으면 도리어 말이 모호해지지 않던가.
어쨌든 광범위한 중간층을 대변하는 중도입장에서 개혁보수와 온건진보를 포괄하고, 그 안에서 이해가 조율되고 합리적 선택이 가능한 그런 정당이 나올 시기가 됐다. 억지 분류의 보수ㆍ진보 이념과 소수의 계급적 이해에 기반한 정당체제로는 더 이상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자명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이념 지향을 넘어 논리적 대화가 가능한 인물이라는 이유로 유승민 안희정 남경필 등을 묶자는 제안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총선은 글렀지만, 대선은 당세의 영향을 덜 받는 대신 인물대결의 요소가 크다. 만약 새로운 정당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일 수 있다면 안철수에게도 전혀 기회가 없는 건 아니란 뜻이다. 야당에 대한 이런 혹독한 질타는 그만큼 현 정부 여당에 대한 실망이 큰 때문이다.
결국 정치환경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창조적 적응능력을 보이지 못하면 야당도 죽고, 한국정치도 죽는다. 번번이 배반 당하면서도 안철수에게서 완전히 기대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다. 그래도 혹 뭔가 변화의 단초는 만들지 않을까 하는. 그나마도 못하면 그는 정말 큰 죄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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