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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교과서 검정 강화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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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국정화 애초부터 무리수
교과서 제작 체제 개선은 별개 문제
교과서 완결성 높일 방안 가동돼야
애초부터 무리였다. 정부의 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 얘기다.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지나면서 기존 역사교과서 대부분이 ‘좌경화’했다고 느낀 일파(一派)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보수’의 시각을 담은 새 교과서를 만드는 작업이 본격화했고, 마침내 교학사 교과서가 나온 게 2013년이다. 거기까지는 그래도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당시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8종 중 7종이 진보 성향이라면, 보수 성향의 교학사 교과서 하나쯤 나온 게 무슨 대수겠는가.
무리가 빚어진 건 그 이후다. 정부가 일선 학교를 압박해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늘리려는 기미를 보이자, 진보 쪽에서 이념의 포문을 열었다.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ㆍ친미 성향으로 편찬됐다며 연일 공세를 폈고, 일선 학교가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도록 조직적인 활동에 나섰다. 요컨대 정부의 무리한 교학사 교과서 확산 시도가, 어떠한 시각차도 용납할 수 없다는 진보 진영의 ‘교학사 교과서 죽이기’라는 또 다른 무리를 낳은 셈이다. 그런 무리와 무리가 충돌하면서 온 나라가 팥죽 끓듯 들끓은 끝에 이번엔 아예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새로운 무리수가 등장한 것이다.
당시 상대측 교과서가 함량 미달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서로 헐뜯는 과정에서 보수든 진보든 8종 교과서 모두에서 수많은 사실 오류가 드러났다. 그러자 정부는 교과서를 보다 책임 있게 잘 만들겠다며 뜬금없이 국정화 방침을 밝히는 한심한 방안을 냈다. 정부로서는 질 좋은 교과서에 대한 요구에 부응하면서, 입맛에 맞는 역사교과서를 예외 없이 보급시킬 수 있는 묘책이라고 여겼는지 모르지만 졸렬한 꼼수에 불과했다. 결국 그 결과가 보수와 진보를 망라한 학계 대부분과 다수 여론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지금의 상황으로 이어진 셈이다.
문제는 정부의 잇단 무리수와, 그에 대한 반발이 당연한 상식까지 무너뜨리는 또 다른 무리수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다른 얘기가 아니다.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여부와 관계 없이, 수많은 오류가 드러나면서 보다 질 좋은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집필과 편수 시스템을 개선해야만 한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다. 그런데 국정화 반대 논리가 극단화하면서, 국정화는 물론이고 집필과 편수 시스템 개편 역시 사실상 국정화를 위한 꼼수라며 반대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교과서 집필 및 편수 시스템 개편을 꼼수로 보는 무리한 시각엔 한 신문의 애매한 기사가 작용했다. 진보 성향인 그 신문은 최근 ‘황우여 교육부총리가 국정화를 포기하는 대신 검정 강화를 통해 교과서 간 편차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고 했다. 이어 교육부가 검정 강화 방안으로 집필진 자격기준 마련과 교육부의 자체 편수기능 강화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기사를 써서 마치 검정 강화가 정권 입맛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처럼 얘기를 꼬았다.
하지만 집필진 자격기준 마련과 편수기능 강화 방안은 국정화 트랙과는 별도로 보는 게 옳다. 서남수 전 장관 때부터 공론화해 정부도 이미 지난 7월30일 검정 심사체계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교과용도서 개발체제 개선 방안’을 공식 발표하는 등 공개적인 추진에 나선 상황이기 때문이다.
굳이 신문 보도까지 거론하며 검정 강화가 국정화 시도와는 다른 문제임을 애써 밝히려는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엔 반대해도, 차제에 교과서 제작 시스템을 개선하는 건 절대 포기할 수 과제라는 생각에서다. 단순한 오류 때문만이 아니다. 핵심 개념에 대한 설명이 빠지거나 단원 구성의 유기성이 애매한 어처구니 없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교과서 오류가 나와도 교육부의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게 지금 체제다.
사관(史觀)의 옳고 그름에 앞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교과서의 완결성을 높이고, 누군가 엄정하게 책임을 지는 방향의 교과서 제작 체제 개편은 꼭 필요하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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