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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원치 않은 '사채왕' 수사… 그래서 더 밝히고 싶었다

입력
2015.01.26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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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한 사람 무고에 탈세·마약…죄질 최악이었던 사채왕

결국 수면 위로 드러난 진실, 사법부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12년 2월 13일자 한국일보 1면 톱기사는 ‘사채왕 세무조사’였다. (기사 바로보기) ‘명동 사채왕’으로 통하는 최진호(61ㆍ수감 중)씨가 언론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10여년 기자생활 동안 그토록 죄질이 안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도박판을 주름잡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검찰과 경찰의 비호를 받았다. 지난 20일 그로부터 수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원지법 최민호(43ㆍ구속) 판사가 구속된 사건의 뿌리는 이렇게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검·경의 비호 받은 사채왕 최진호

2011년 말 최씨에게 피해를 당했다는 사업가를 만나 최씨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사연은 기가 막혔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피해자의 과장과 거짓이 섞여있다고 믿었다. 최씨는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 사업가를 구속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멀쩡한 사업가를 아무 잘못도 없이 어떻게 구속되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수사기관을 떡 주무르듯 하던 최씨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전국의 도박판을 주름잡았던 최씨는 지인들 사이에서 ‘최 검사’ ‘밤의 대통령’이라 불렸다. 도박장에선 그의 말이 곧 법이었다. 그의 말을 거스르면 경찰에 잡혀가거나 검찰 조사를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최씨가 ‘검은 거래’를 통해 다져놓은 수사기관 인사들과의 끈끈한 인맥과 하수인을 이용한 허위진술이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했다.

이 사업가도 2010년 최씨 일당의 계략으로 구속돼 75일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최씨의 하수인이 경찰에 출석해 ‘사업가가 마대자루로 누군가를 때리는 걸 봤다’고 허위진술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을 느낀 하수인이 법정에서 진실을 밝히면서 최씨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러자 최씨는 검찰을 이용해 이 사업가를 재차 구속시키기로 마음 먹고 이듬해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협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이 사업가는 그러나 구속영장이 기각되고 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검찰과 경찰은 왜 그런 무리한 수사를 했던 걸까. 최씨 지인들은 검ㆍ경 인사들이 최씨 측으로부터 뒷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최씨에 대한 기사를 계속 보도하자 기자에게 최씨 지인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보복의 위험을 무릅쓰고 최씨의 범죄행각을 밝히고 싶어했다. 이들로부터 받은 자료가 집 베란다를 가득 채웠다. 2011년 말 최씨는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함께 살던 내연녀를 마구 때려 갈라섰다. 최씨의 잔인함을 잘 알고 있던 이 여성은 자신이 구속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 국세청과 검찰에 제보를 했다. 때마침 최씨의 악행을 눈여겨보고 있던 ‘독종 검사’를 만나게 된다. 다단계회사 제이유그룹 주수도 전 회장의 비리를 파헤쳤던 이종근 검사가 최씨 비리를 낱낱이 수사했다. 최씨의 공소장에는 공갈과 사기, 협박, 마약, 위증교사, 변호사법 위반, 탈세 등 20여가지 혐의가 적혔다.

주변 사람들의 증언은 그 이상이었다. “없는 일도 만들어 사람을 구속시킨다” “상당수 경찰이 그의 하수인이다” “공소장 범죄사실은 빙산의 일각이다” 등 끝이 없었다. 최씨의 전 내연녀는 이렇게 말했다. “최씨와 인연을 맺은 경찰 인사 가운데 돈을 안 먹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을 못할 정도다.” 이 여성은 최씨의 지시로 뇌물로 전달할 돈을 준비한 당사자였다. 검찰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사관들은 물론이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현직 때 돈을 받은 검사도 있을 것으로 최씨 지인들은 믿고 있었지만 자세한 내막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린 결론은 이랬다. “최씨를 알게 된 것 자체가 비극의 시작이다.”

● 법원이 감싼 현직 판사 최민호

최 판사의 금품수수 관련 제보도 최씨의 전 내연녀로부터 받았다. 사채왕 기사를 첫 보도한 지 1년 반이 지났을 즈음 이 여성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그로부터 최 판사 이야기를 들었지만 곧바로 기사화할 수는 없었다. 사실과 다른 일방적 주장일 수도 있어 강제수사권이 없는 기자로서는 쉽게 쓸 수 없는 기사였다. 이 여성을 100번 가까이 만나 같은 질문을 하고 또 했다. 최씨의 판결문과 수사기록을 보고 또 봤다. 별도로 입수한 최씨의 2년치 구치소 접견 녹음파일까지 분석해 보니 이 여성의 말이 사실이라는 확신이 섰다.

때마침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는 2013년 여름 최민호 판사 금품수수 첩보를 이 여성에게서 입수해 내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그를 10차례 가까이 불러 사실확인서와 조서까지 받으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그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최씨를 구속해 재판에 넘긴 2012년 4월 이후에도 최 판사 첩보가 생성됐지만 검찰은 수사하지 않았었다. 두 번 모두 첩보나 내사 단계에서 멈춰버린 것이다. 최 판사가 검사 출신이고 ‘제 식구’인 검찰 수사관들도 여러 명 걸려 있어 부담이 됐을 것으로 봤다. 현직 판사를 수사했을 경우 파생될 법원과의 갈등을 우려해 수사를 접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경찰은 검찰보다 앞서 1년 가까이 내사를 진행했다. 계좌추적 영장을 신청할 경우 검찰과 법원 단계에서 기각될 것을 감안해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를 활용하며 현장조사까지 마쳤다. 그러나 경찰 수뇌부는 막판에 제보자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끝내 정식수사로 전환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착수했고 경찰은 1년 동안 헛수고만 한 셈이 됐다. 최 판사가 긴급체포 되던 날 일부 경찰들 사이에서는 “남 좋은 일만 시켰다”는 탄식이 흘러 나왔다고 한다.

대법원도 최 판사가 제출한 소명자료를 근거로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됐을 경우 사실과 다르다고 발표하기로 입장을 정리해둔 상태였다. 검찰과 경찰, 법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수사였다.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진실은 그대로 묻힐 판이었다. 한국일보는 2014년 4월 8일자 1면을 시작으로 전례 없는 현직 판사의 수억원대 금품수수 의혹을 연속 보도했다.

이후 쏟아진 압박은 예상했던 것이었다. 검찰과 경찰은 “내사를 한 적이 없다”고 태연히 거짓말을 했다. 대법원은 “부정확한 팩트를 기초로 보도가 나오고, 그로 인해 사법 신뢰에 타격이 오게 된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판사의 개인비리 보도에 대해 대법원이 직접 나서 반박한 것도, 사실을 엄밀히 확인하지도 않은 채 언론에 대놓고 협박한 것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이 공식적으로 사실관계를 부인하고 수사기관마저 머뭇거리자 다른 언론은 이 사안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오히려 ‘기자가 공명심에 눈이 어두워 질렀다’느니 ‘법정관리 중인 한국일보가 법원 압박용으로 기사를 썼다’는 등의 마타도어만 선명했다.

9개월이 지난 지금 진실은 드러났고 수사는 마무리 단계다. 그러나 사법부가 반성하고 책임져야 할 일이 남아있다. 법관이 범죄의 유혹에 한 눈을 팔 때 ‘대법원은 제 식구라도 감싸주지 않는다’는 확신을 상기시키는 일, 섣불리 비위 판사의 소명에 기대기보다 자정시스템을 강화하는 일, 이것이 사법부에 남겨진 몫이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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