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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쓰레기 정보더미 위의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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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회씨 국정농단 의혹 문건’ 사건에 대한 검찰의 결론은 이렇다. ‘근거 없는 풍설이 정보로 포장돼 유포되고, 이를 공직자가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가공해 국정운영 최고기관의 동향보고 문건으로 탈바꿈됐다’는 것이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몇몇 사람의 개인적인 사심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을 했다”고 이를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출된 문건의 언론보도 1주일 뒤 “찌라시에 나오는 이야기들에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검찰이 찌라시 이상의 것으로 판명했으니, 정말 부끄러운 것은 ‘쓰레기 정보더미’를 깔고 앉은 청와대다.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에게 유출된 청와대 문건의 일부 내용의 수준은 더 가관이다. 모 관광업체 대표는 4명의 여인과 사실혼 관계에 있고, 유명 연예인과 동거하는 등 성생활이 문란하다고 했고, 서울의 모 호텔 회장은 경리 여직원과 불륜관계에 있으며 자신의 집무실에서 환각제를 복용한 채 성관계를 가졌다는 내용이다. 삼류 주간지에서나 볼 만한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사실 확인도 없이 동향문건으로 국가 최고기관 내부에서 생산돼 나도는 게 정상적인가. 은밀한 사생활이 확인될 리도 없다.
청와대는 애초 십상시 모임 문건에 대해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 무시했다고 한다. 실체가 없는 것이라면 이간계(離間計)나 다름없다. 후한 말 라이벌인 왕윤이 정권 실세인 동탁과 그의 심복인 여포를 이간하고 결국 여포가 동탁을 죽이도록 만든 삼국지의 유명한 이간질 행태다. 정윤회씨가 십상시에게 청와대 실세인 김기춘 비서실장을 내치기 위해 정보 유포를 지시했다는 각색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수하인 박관천 경정이 허위정보로 김 실장의 힘을 빌리려는 의도를 의심하는 게 자연스럽다.
청와대 내에서 흘러 다니는 왜곡된 정보의 유통구조에 대한 문제나 그 심각성에 대한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조 전 비서관이나 박 경정의 입지나 역할강화라는 검찰의 동기 추정에서 더 나아가 윤 홍보수석이 ‘개인적 사심’이라고 한 말은 ‘예외적인 경우’로 보고 있다는 뜻이겠다. 청와대 관계자는 한 종편에서 “민정수석실에서 이런 보고서를 썼다는 게 믿을 수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박 경정이 작성한 것들 가운데 소문만으로 작성한 보고서가 많다는 말도 들린다. 비단 박 경정만이겠는가. 무수히 생산돼 국가 최고기관에 보고되는 상당수 동향이나 정보가 아무런 검증, 사실확인도 이뤄지지 않은 채 청와대 내부를 떠돌고, 심지어 최고 책임자에게까지 올라가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게 된다. 이 정부 들어 빚어진 숱한 인사 실패의 배경에 정실성과 의도성이 개입된 사실의 왜곡 내지 누락이 없지 않았을 것이란 보장도 없겠다.
솔직히 권력 암투라는 것은 조직의 건강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며, 백안시할 것은 아니다. 권력의 곁불을 쬐고 있는 이들 사이에 상호 견제와 균형이 작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은 역사가 말해준다. 이라크전 개전을 둘러싼 조지 W 부시 행정부 내 매파인 딕 체니 부통령 측과 비둘기파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의 첨예한 갈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부시는 매파의 손을 들어줬고, 파월도 결국 이를 따랐다. 그 배경에는 결정적으로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한 정보의 왜곡, 조작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검찰 조사가 미치지 못한 여러 의혹으로 볼 때 십상시 문건이 허위라고 해서 이른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있었는지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언론에 수 차례 ‘워치독(Watchdog)’을 언급하며 직무에 충실했다고 하는 조 전 비서관이 비선실세 존재에 대한 충만한 견제심리를 가질 만큼 여러 정황이 있었다고 보기에 의혹은 낱낱이 해소돼야 한다. 그렇다고 십상시 문건 작성과 보고의 책임자로서 왜곡된 정보를 생산하고 유출한 책임을 면할 길은 없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청와대 문건 유출에 대해 자성한다고 했지만, 정말 우려되는 것은 정책과 인사 결정에 있어 대통령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의 질적 수준이다. 청와대가 내부적으로 혁신해야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정진황 논설위원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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