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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그 많던 사람들아

입력
2014.09.03 19:27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청을 하며 3보1배를 하고 있다. 이날 유가족들은 특별법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서명을 전달하려다 경찰에 막혀 광화문광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배우한기자bwh3140@hk.co.kr
세월호 유가족들이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청을 하며 3보1배를 하고 있다. 이날 유가족들은 특별법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서명을 전달하려다 경찰에 막혀 광화문광장을 벗어나지 못했다. 배우한기자bwh3140@hk.co.kr

87년 서울 도심 인파는 사회 바꿔

시복 미사 참가자들은 무엇을 하나

세월호 피눈물 닦지 못하면 무의미

버스를 타고 집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집으로 출퇴근 하는 길에 청와대 앞을 지나간다. 지금 그 길 옆에는 세월호 가족들이 머물고 있다.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수의 경찰에 둘러싸인 채 낯선 거리에서 고통을 견디고 있는 그들에게 평범하고 소심한 누군가가 할 수 있는 것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이 사회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충격적인 사건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체감도가 떨어지는 게 현실이지만 그래도 300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된 이 엄청난 일을 놓고 피로하다는 말을 쉽게 내뱉거나 심지어 유족을 공격하는 태도는 너무 야박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그가 던진 발언에 한국 사회가 공감하고 감동했던 게 채 20일이 안 된다. 지난달 중순 한국을 찾은 교황은 방한 기간 내내 세월호 유족의 고통을 어루만졌다.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고백까지 했다.

그의 행동과 발언에 대한 반응은 시복미사에 모인 인파에서도 확인됐다. 누구는 80만명이라 하고 또 누구는 100만명이라고 했다. 그 많은 사람이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에 이르는 길다란 아스팔트 길을 가득 메운 채 찌는듯한 무더위를 참아 가며 시복미사를 참관하고 교황의 말을 들은 것은 놀랍고도 특이한 일이었다.

그날 먼발치에서나마 교황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싶어 현장을 찾았다가 인파에 밀려 행사장 바깥을 맴돈 끝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1987년 6월을 생각했다. 그때도 서울시청 앞 광장과 태평로 일대가 사람으로 가득 찼었다. 박종철과 이한열 두 학생이 목숨을 잃고 그것이 군사정부의 강권 통치에 대한 국민 저항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당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해 일과시간 중 사무실이 있는 태평로 고층 건물에서 그들의 대열을 내려다 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안절부절못하며 주먹을 쥐었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자리에는 야권 인사와 민주인사뿐 아니라 학생과 직장인도 많았다. 그들이 최루탄의 매운 연기를 마셔 가며 싸운 결과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게 됐고 민주적이고 진취적인 제도와 분위기가 확산됐다. 오랫동안 짓눌려 온 노동계는 그해 여름 내내 강력한 투쟁을 한 끝에 제 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사회 문화 전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노력이 이어져 한국 사회에 역동성을 가져왔다. 27년 전 서울 도심을 메웠던 그 인파는 한국 사회를 바꾸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시복미사 참석자들은 외견상 그때 그 사람들과 확연히 다르다. 광장으로 달려온 이유도, 생각도 다를 게 틀림없다. 그래도 80만이든, 100만이든 그 정도 인파가 모였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교황의 생각과 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저 종교계의 유명인을 만나기 위해 모였다면 어이없는 일이다. 그래서 소설가 김도언은 교황의 파격 행보를 좋아하고 자신이 삐딱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는 전제를 단 뒤“볼셰비키 시절도 아니고… 계몽주의 시대도 아닌 21세기에 100만명이라는 숫자가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인다는 건, 인간의 불가해한 광기와 집착의 어떤 전거를 보여 주는 것만 같아 끔찍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27년 전 서울 도심에 모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광화문광장의 100만명이면 못할 일이 없다. 교황이 지적한 것처럼 탐욕스러운 경제체제를 거부할 수 있고 권력과 부자의 횡포에 맞설 수 있다.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다. 부정한 정치인을 쫓아낼 수 있고 퇴행적인 시도를 막을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그 많은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인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민족 명절 추석이 다가오지만 지금 세월호 유족은 거리에서 여전히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치권은 무례하고 뻔뻔하고 무능하다. 그들을 보면서도 사람들은 점차 무심해진다. 광화문에 모였던 사람들은 이럴 때 무엇을 하려는가.

박광희ㆍ부국장 겸 문화부장 khpark@hk.co.kr

지난달 16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에 앞서 세월호 희생장 유가족들이 있는 천막 앞에서 내려 기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16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 미사'를 집전하기에 앞서 세월호 희생장 유가족들이 있는 천막 앞에서 내려 기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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