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도] 세월호 특별재판소도 만들어야 할까

입력
2014.08.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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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를 주장하는 측은 세월호 사건은 정부가 총체적 탄핵 대상인 만큼 도저히 정부를 신뢰할 수 없어 독립된 진실 규명의 기구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피해자가 참여하는 위원회가 수사ㆍ기소권을 갖는 게, 현 사법 체계를 뒤흔드는 것이란 논란에도 국가가 근본적 불신 대상에 오른 비상한 사태인 만큼 사법원칙을 뛰어넘어서라도 비상한 진실 규명의 수단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됐던 반민특위 사례가 종종 거론된다.

그렇다면 특별법에 ‘세월호 특별재판소’를 만들자는 요구는 왜 하지 않을까. 그 논리대로라면 대법원장도 국회의 동의를 거쳐 결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인데 법원이라고 믿을 수가 있나. 특검이 받고 있는 불신 만큼 사법부도 그간 권력자나 재벌 총수 등에 대한 봐주기 판결로 불신이 적지 않았던가. 특히 법원이 수사 과정에서 고위 공직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거나, 청와대나 국정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해 진실 규명에 방해를 할 소지도 있지 않은가. 검찰도, 특검도 믿을 수 없는 ‘총체적 국가 불신’의 시대에서 법원은 예외란 말인가.

그런 비상한 사태라면 역사적 선례도 없지 않다. 국제적으로 전범, 반인류적 학살범, 부역자 재판 등에선 특별재판소가 운영됐고, 세월호 진상조사위의 모델로 거론되는 반민특위에도 특별재판소가 설치됐다. 지금이 그처럼 비상한 진실 규명의 수단이 필요한 비상한 사태라면, 사법 원칙을 깨더라도 진상조사위에 강력한 칼을 주는데 대해 국민들은 압도적 지지를 보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과연 그런 상황일까. 반민특위 같은 진상조사위가 구성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금의 기세로 보면 강력한 수사권을 가진 조사위는 특별재판부의 지원 속에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뭐했냐며 청와대를 뒤지고 비서실장을 소환하고, 세월호가 국정원 소유가 아니냐며 온갖 관계자들을 소환할 것이다.

그래서 세월호 침몰 사고의 숨은 비밀이라도 밝혀질까? 예컨대 세월호가 미국 잠수함과 충돌했다는 기상천외한 비밀이 드러날까? 세월호가 국정원의 비밀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침몰해 국정원의 지시로 해경과 해군이 의도적으로 구조하지 않았다는 단서라도 나올까? 이런 엄청난 음모의 혐의가 1%라도 있다면, 진실 규명을 외치는 목소리에 100% 지지를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세월호 사고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진실’은 정부가 ‘악의적 목적’으로 고도로 정교하게 움직인 어떤 작위가 아니라, 그저 무능과 혼란이 뒤범벅된 끔찍한 ‘무위’(無爲)일 것이다. 세월호 사고 당시 가장 먼저 구조에 나섰던 해경 123정 정장이 법정에서 당시 선체 진입 지시를 내리지 않은 데 대해 “당황해서 깜빡 잊었다”고 해명한 것처럼, 법정에서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대체 뭘 했냐”는 추궁에 ““경황이 없어서 챙기지 못했다” 거나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지리한 해명이 이어질 게 뻔하다.

‘아이들이 죽어가는 동안, 대체 뭐했냐’는 추궁의 정점은 결국 대통령이 될 게 눈에 선하다. 보고만 받고 딱히 특별한 지시를 내리지 않은 대통령의 무능을 두고 정치적 논란이 끝도 없을 것이다.

현행법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없기에 특별재판부가 비서실장 등에 대해 무위 공범의 혐의로 사법 처리를 했다고 치자. 어느 한 진영은 속이 시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한 쪽은 어떨까? “민간 회사가 저지른 대형 사고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게 뭐냐. 대통령이 신이라도 되냐” 며 진상조사위를 향해 화염병이라도 던질지 모른다. ‘무위(無爲)의 책임’은 보는 시각에 따라 끝도 없고 답도 없기 때문이다. 이는 또 다른 원한의 시발점이 돼 우리 사회는 완벽하게 반쪽으로 갈라질 것이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반대 쪽은 세상 만사 모든 잘못되는 일들의 책임을 대통령에게 물으려 들 것이다. “~ 하는 동안, 뭐했냐”며. 제발, 이것이 나만의 끔찍한 시나리오이기를 바랄 뿐이다.

정치부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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