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했으면 제4이통이 됐겠지"

입력
2024.06.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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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동통신사 후보 자격을 취소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도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스테이지엑스의 제4이동통신사 후보 자격을 취소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체감할 수 있는 정말 빠른 '리얼 5G'를 보여주겠다. 오프라인 대리점에 발품 팔지 않도록 유통망을 온라인과 고객 중심으로 혁신해 비용을 절감하겠다. 혁신 기술을 도입해 통신장애에 기민하게 대응하겠다. '제4이동통신사' 후보로 선정된 스테이지엑스가 그동안 내놓았던 약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해부터 28기가헤르츠(㎓) 주파수 대역을 내놓으면서 꿈에도 기다렸던 바로 그 제4이통이기도 했다. 기술 혁신과 시장의 힘을 통해 가계통신비를 절감하겠다고 나섰으니 '돈은 아끼고 코는 풀고 싶은' 정부 정책 기조에도 맞아떨어진다.

이런 제4이통의 꿈은 4개월 만에 산산조각이 났다. 27일 청문 절차를 앞두고 있지만 주파수 분배 권한을 쥔 정부가 포기했으니 도리가 없다. 표면상의 이유는 제4이통 신청을 한 기업과 실제 법인의 동일성이 증명되지 않아서라 한다. 지난 2월 28㎓ 주파수 경매를 신청한 '스테이지엑스'는 2,050억 원을 들고 오기로 했는데, 5월에 주파수를 받겠다고 나온 '스테이지엑스'는 서류상 1억 원짜리 법인이라서 둘이 다르다는 얘기다.

과기정통부는 긴 브리핑을 통해 정부가 얼마나 억울한지, 이 취소 처분이 왜 '법적'으로 정당한지에 대해 서류 원본을 꺼내 가며 길게 설명했다. 스테이지엑스는 스테이지엑스대로 억울함을 토로한다. 이미 사전 신청 때부터 주파수를 받고 나서 3분기까지 자본을 모으기로 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런 내용은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당사자들끼리 '법적'으로 다툴 내용일 뿐이다. 국민 입장에선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던 제4이통이 갑자기 좌초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빠진다. 사실상 그럴싸한 얘기를 들고 헛꿈을 판 것이니 말이다. 28㎓ 전파가 짧기에 제4이통의 사업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출범 전부터 숱하게 나왔다. 스테이지엑스의 선배격인 일본의 라쿠텐모바일도 28㎓ 외에 4G와 5G 서브6 대역 망도 확보해 사업을 하고 있다. 그나마도 막대한 증설 비용과 가입자 확보 부진 때문에 라쿠텐은 올해 1분기까지 15분기 연속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라도 포기했으니 다행"이란 소리까지 나오는 이유다.

카카오에서 막 떨어져 나온 알뜰폰 사업자가 큰돈을 제때 마련하기를 기대하는 건 어찌 보면 가혹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스테이지엑스가 써 낸 경매 낙찰액 4,301억 원만 믿고 있다가 필요사항을 이행할 기한 2주 전에 2,050억 원이 준비가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결국 '돈만 제대로 준비했더라면 제4이통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그걸 스테이지엑스가 못했다'며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정말로 제4이통을 원했다면 애초에 이를 저자본 민간 기업에 마냥 맡겨서는 안 됐다. 명확한 기술력과 자본 동원력이 있고 수년 동안 수천억 적자를 견뎌낼 수 있는 기업을 끌어들이든지, 아니면 직접 큰돈을 쏟아붓든지 해야 했다. 대신 정부는 '시장의 힘을 믿는다'는 핑계로 멋지게 등장한 스테이지엑스가 기적 같은 서커스를 성공시키길 기도만 했다. 돌아온 결론은 '요행을 바라선 안 된다'는 교훈뿐이다. 다음 '제4이통'에의 도전은 더 탄탄한 기반과 시대의 부름을 타고 성공하는 결말을 맞길 바란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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