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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5일… 그가 남긴 5가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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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을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자신도 고귀한 선물을 남기고 떠났다. 이 땅에 머문 닷새 동안 그가 떨구고 간 선물 꾸러미는 모두 다섯 개다. 그 꾸러미에는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안아주고’ ‘일깨우는’ 치료약이 들어있다. 마지막 꾸러미에는 우리에게 남긴 숙제가 담겼다. 교황의 방한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낼지, 갈등과 반목의 한국병을 치유할 ‘묘약’으로 만들지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울렸다
뭉클하다, 울컥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영오(47)씨가 교황의 손등 위로 얼굴을 묻는 장면을 보고 시민들은 그렇게 말했다. 30일 넘게 단식하는 동안 한국 사회의 어떤 정치ㆍ종교 지도자도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았었다. 교황은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일그러진 교황의 얼굴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있음이 느껴졌고, 그의 기도에서 진심이 읽혔다.
교황도, 그와 만나는 이들도 웃는데 보는 이는 슬펐던 장면도 있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버려진 이들을 교황은 따뜻하게 안아줬다. ‘사랑이 가장 좋은 약’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안았다
교황은 18일 나무 십자가를 바티칸으로 가져갔다. 세월호 참사에 자식을 잃은 두 아버지가 38일 간 메고 전국을 돈 십자가다. 고통과 상처, 분노와 염원이 얼룩져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외상을 껴안는 의미”라고 임상심리학자인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는 해석했다.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에게서 받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닌 것도 같은 의미다. 교황은 희생자 가족뿐 아니라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한 이들에게도 편지를 쓰고 묵주를 남겼다. 교황청 대변인인 롬바르디 신부는 “희생자와 가족의 고통에 동참하고 공감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웃겼다
자신을 내려놓는 교황의 유머는 어딜 가나 ‘특급 인기’였다. 교황이 한국천주교주교회의를 방문했을 때다. 강우일 주교회의 의장이 교황 문장이 그려진 두꺼운 종이를 내밀어 사인을 청했다. 그러자 교황은 종이 귀퉁이에 이름만 작게 적었다. 숨죽여 교황을 지켜보던 주교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시아 청년들을 만나서는 “젊은이들 앞에선 원고대로 읽지 말라던데요”라며 보던 종이를 흔들었다. 그러더니 “난 영어를 잘 못해요. 이탈리아어로 제대로 얘기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청년들은 “비바 파파(교황님 만세)”를 연호했다.
깨웠다
소외된 이에게 품을 연 교황은 권력자에겐 입을 열었다. 14일 한국 주교들과 만나 “사목자들은 성공과 권력이라는 세속 기준을 예수의 가르침보다 우선하려는 유혹을 받는다”고 말했다.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돼라’는 뜻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깨웠다.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을 일구는 메시지를 던졌다. “죄 지을 경우가 많다. 실망하지 말라. 주님께선 절대로 용서하는 것에 피곤해하시지 않는다.”
남겼다
교황의 위로와 축복, 기원, 일깨움은 한국 교회에 숙제로 남았다. 서강대 교목처장인 김용해 신부는 “교황의 말씀에서 약자와 소외된 자의 고통을 교회와 사제들이 함께 짊어지고 가는 십자가 정신이 더욱 필요한 때임을 느꼈다”고 말했다. 교황방한위원회 집행위원장인 조규만 주교는 “다른 사람이 바뀌기를 바라기 전에 우리부터 교황께 배운 대로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생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에게도 마찬가지다. 한상봉 가톨릭뉴스지금여기 주필은 “모두를 살리는 경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공동선, 그것을 향한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교황이 거듭 일깨우고 갔다”고 말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교황에 대한 열광은 갖지 못한 리더에 대한 열망”이라며 “이 시대 지도자들이 이를 알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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