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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행동·사람 중심" 구원의 열쇳말 큰울림 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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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성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 무한경쟁·물질주의 맞서 싸워야"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 거부" 신자유주의 허상 비판·질타
슬퍼하되 슬픔에 그치지 말라고 했다. 남 일인 척 앉아있지만 말라고 했다. 일어라 함께하라고 엉덩이를 떠밀었다. 방한 둘째 날, 처음 대중 앞에 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다. 온 국민을 고통과 비탄에 잠기게 한 세월호 참사. 이 비극 앞에서 교황은 눈물이 아닌 행동을 말했다. “연대하고 협력하라”는 것이다. 전날에는 공직자들 앞에 서서 ‘연대의 세계화’란 표현을 처음 썼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로 가기 위해 교황이 우리 앞에 꺼낸 열쇠이기도 하다. 연대, 행동, 사람. 이것이 무엇이길래 교황은 강조하는 걸까.
연대의 교황
교황은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삼종기도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처음 언급했다. 그런데 뜻밖이었다. 뻔한 기도가 아니어서다. “세월호 참사로 생명을 잃은 이들과 대재난으로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께 의탁합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주님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한 뒤였다.
“이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며,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황 입에서 “하나” “공동선” “연대” “협력”이란 말이 쏟아졌다. 희생자 가족이 한국사회에서 피해자로서 고립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교황은 이를 몸소 보여주려는 듯 미사 직전 만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건넨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나왔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의 한상봉 주필은 “세월호 참사 유족과 함께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교황이 알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의 연대와 동참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교황은 전날(14일) 청와대에서도 “연대의 세계화에 한국이 앞장서길 바란다”고 했었다. 지난 해 7월 람페두사를 찾아 “무관심의 세계화가 다른 이를 위해 눈물 흘리는 법을 빼앗아갔다”고 비판했던 교황이다.
한상봉 주필은 “무관심의 세계화에 맞서는 의미로 교황이 ‘연대의 세계화’를 처음 제시하며 무관심을 버리고 연대하라고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행동하는 교황
정의는 거저 오지 않는다. 교황은 ‘불의에 맞서는 행동’을 강조해왔다. 교황이 전날 말한 “평화는 정의의 결과”도 결국은 궤를 같이 한다. 15일 강론에서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 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모든 남성과 여성, 어린이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빕니다.”
물질주의, 무한 경쟁의 사조는 곧 ‘죽음의 문화’이며, 이를 배척하기 위해 싸우고 행동하란 의미다.
교황의 메시지를 분석한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를 쓴 진슬기 신부는 “교황은 부정의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아가 실천과 행동이 정의의 바탕이 된다고 보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 신부는 또 “교황은 특히 실천과 행동을, 부정의로 피해를 입은 소외된 자, 약자만이 아니라 공동체의 의무로 본다”며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는 ‘모두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고 풀이했다.
사람을 위한 교황
이 모두는 ‘사람 중심 사회’를 위해서다. 교황이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도록 하는 경제 시스템, 돈을 우상으로 섬겨 겉만 화려할 뿐 속은 공허한 현대인을 질타하며 끊임없이 각성시키는 이유다. 이날 미사에서도 교황은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 복음이 제시하는 이 희망은, 외적으로는 부유해도 내적으로 쓰라린 고통과 허무를 겪는 사회 속에서 암처럼 자라나는 절망의 정신을 위한 해독제”라고 강론했다.
한상봉 주필은 “돈이 돈을 버는 금융자본주의는 노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인간을 잉여계급, 소모품으로 전락시킨다”며 “교황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이유는 인간과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이고 이것이 복음의 가르침에도 맞다고 교황은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강대 교목처장인 김용해 신부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우리 모두가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생명의 연대성으로 가능하며 이는 교황이 언급한 ‘연대의 세계화’와도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교황이 강론 끄트머리에 언급한 “다스림이 곧 섬김인 영원한 나라”도 눈 여겨 볼 대목이다. 김 신부는 “권력자들이 흔히 다스림을 지배로 여겨 부정부패나 군대 내 가혹행위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데, 교황은 다스림은 곧 섬김임을 늘 강조하고 몸소 실천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탄 차의 운전기사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 자기가 볼 서류가 들었으니 당연하다며 가방을 직접 드는 교황의 존중과 배려가 그것이다. 김 신부는 “하느님의 대리자인 자신도 사람일 뿐이라는 걸 말하는 듯하다”고 했다. 교황은 길잡이일 뿐, 구원은 자신이 직접 행동할 때 찾아온다는 진리를 교황은 말로, 행동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지은기자 lun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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