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쌌다 풀었다…결국 유임된 정총리

입력
2014.06.26 11:09

사의표명 60일만에 '시한부' 꼬리표 떼어내

잇단 '청문회 트라우마' 따른 고육지책 성격

정홍원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서울청사와의 영상 국무회의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홍원 국무총리가 24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서울청사와의 영상 국무회의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했던 정홍원 총리가 후임 총리 후보의 연쇄낙마 속에서 2차례나 짐을 쌌다 풀었다 하는 우여곡절 끝에 26일 결국 '국정 2인자' 자리를 유지하게 됐다.

정 총리는 지난해 2월8일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박근혜정부 초대 총리로 지명됐고, 정부 출범 하루 뒤인 같은달 26일 임명돼 지금까지 총리직을 수행해왔다.

경남 하동 출신으로 성균관대 법정대를 졸업한 정 총리는 30년간 '특수통' 검사로 경력을 쌓았고, 공직을 떠난 후에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거쳐 변호사로 활동해왔다.

박 대통령과 인연이 닿은 것은 박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새누리당을 이끌던 2012년 초였다. 그해 4·11 총선의 공천위원장으로 발탁된 정 총리는 박 대통령을 도와 개혁공천을 주도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책임총리'에는 못 미친다는 지적 속에서도 특별한 대과없이 무난하게 총리직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아온 정 총리가 타격을 받은 것은 바로 세월호 참사였다.

300명이 넘는 인명피해를 낸 대형 참사가 터진 지난 4월16일은 바로 정 총리가 공교롭게도 중국과 파키스탄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었다.

정 총리는 귀국 도중 총리 전용기 기수를 서울공항이 아닌 전남 무안공항으로 돌리게 하고 곧바로 사고 현장을 찾는 등 수습활동에 집중했지만, 정부의 무능한 대응 및 수습 과정이 질타를 받으면서 입지가 좁아졌다.

특히 사고 당일 찾은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분노한 일부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욕설과 '생수병 세례'를 받고 곧바로 자리를 뜬 것이나, 며칠 뒤 청와대로 올라가겠다는 일부 가족들이 경찰과 대치 중일 때 승용차 안에 몇시간 동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인 것 등으로 본인에 향한 비난과 지적도 감수해야 했다.

결국 정 총리는 4월27일 참사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사의를 수용하면서도 후임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총리직을 수행하라는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 총리는 '시한부 총리'로 제한적인 활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안대희 전 대법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총리 후보로 지명됐지만 이들이 각각 전관예우, 역사인식 논란 끝에 자진사퇴하면서 정 총리는 어정쩡한 상태로 시한부 총리직을 계속 이어갔다. 그런 와중에 사의 표명 이후 60일 만인 이날 박 대통령의 사의 반려로 '시한부'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게 됐다.

정 총리가 이처럼 유임된 것은 후임 총리 후보의 연쇄 낙마 사태 이후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만한 후보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국정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또 정 총리가 현 정부 초대 총리로서 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데다 정부 출범 이후 1년4개월간 총리직을 수행해왔기에 국정과제 추진을 효율적으로 이끌 수 있다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와 관련, "유임 결정의 기본 취지는 국정공백 최소화, 국정운영 효율화인데 이것을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며 "현실적으로 청문회가 열리기까지 당사자가 반론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심적 괴로움 등을 생각하다 보니 많은 분들을 놓고 (적임자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었고, 좋은 분은 많지만 고사한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이 정 총리의 유임을 결정한데는 정 총리가 사의 표명 이후 세월호 참사 현장에 자주 들러 사고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사고 초기에 비해 희생자 및 실종자 가족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주영 해수부장관과 유사한 방식으로 유임하게 된 셈이다.

다만 정 총리는 문창극 전 후보자 낙마 이후 박 대통령으로부터 유임 권유를 받았지만 수차례 고사하다 전날인 25일 밤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 총리는 이날 오전 10시에 정부세종청사에서 자신이 주재할 예정이던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오후 3시로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정 총리는 사의가 반려된만큼 박 대통령의 '국가개조' 수준의 개혁작업에 공을 들일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유임 발표가 나온 직후인 이날 오전 10시2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총리실 1급이상 간부 전원을 소집해 회의를 열고 향후 국정 및 내각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다만 세월호 참사로 사표수리 일보직전까지 갔던 정 총리가 국가개조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인물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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