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첨단 AI칩 수출 때 국가별 수량 통제… 한국 등 동맹·우방 18곳은 예외

바이든 정부, 규제 틀 공개… “안보·혁신”
사용 기업 자격 따라 구매 성능 차등화
중국·러시아·북한 등 적 대상 전면 금수

6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의 기조연설자로 나선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컴퓨터 반도체(칩)처럼 생긴 방패를 들고 강연을 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이 자국산 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칩)를 수출할 때 국가별로 수입 가능한 수량을 통제한다. 특히 중국 등 적대국 대상 수출은 아예 금지된다. 다만 한국을 포함한 18개 동맹·우방국은 예외로 분류돼 현행대로 무제한 수입이 가능하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13일(현지시간) 새로 정비한 미국산 AI 칩 수출 규제 틀을 공개했다. 칩 사용 기업의 자격에 소재 국가 등을 기준으로 등급을 매기고, 구매할 수 있는 성능의 상한선을 차등화하는 게 새로운 틀의 뼈대다. 패권 경쟁국인 중국이 미국의 동맹·우방국이 아닌 다른 나라를 통해 미국산 AI 칩을 수입하는 우회로까지 틀어막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가 안보와 AI 혁신,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게 조 바이든 행정부 목표다.

BIS에 따르면 우선 미국산 무기 수출 금지 대상인 22개국은 이제 미국에서 생산된 첨단 반도체도 수입할 수 없게 된다. 중국(홍콩·마카오 포함), 러시아,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 쿠바, 벨라루스 등이다. 일부 최첨단 폐쇄형 AI 모델이 이들 국가로 이전되지 못하게 하는 조치도 추가됐다.

반대로 미국의 동맹·파트너 국가는 달라질 게 없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미국산 반도체를 제한 없이 구매할 수 있다. 한국, 일본, 대만,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18개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두 그룹을 뺀 나머지 국가들은 수입 가능한 미국산 칩의 총 연산력(computation power)에 상한이 설정된다. 이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정부가 사전 승인 기업에만 지정된 품목의 수출을 허용하는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제도를 활용할 예정이다. 최상위 자격은 ‘세계적으로 검증된 최종 사용자’(UVEU)다. 보안·신뢰 기준을 충족하고 미국의 동맹·우방국에 본사가 있는 기업에 주어진다. 이들은 구입한 AI 칩 수십만 개를 세계 어느 나라에나 배치할 수 있도록 했다. 어느 나라에나 데이터 센터를 세울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총 연산력의 최소 75%를 미국 및 동맹·우방국 내에 유지해야 하며, 7% 이상을 특정국에 두지 못한다.

바로 아래는 UVEU와 같은 보안 요건을 충족하고 우려 국가 소재 기업이 아닌 ‘국가 단위로 검증된 최종 사용자’(NVEU)다. 향후 2년간 첨단 그래픽처리장치(GPU) 최대 32만 개에 해당하는 연산력을 구매할 수 있다. VEU가 아닌 경우에는 국가별 상한인 첨단 GPU 5만 개 상당의 성능까지 미국산 AI 칩 구입이 가능하다.

개선된 규제도 있다. 대규모 데이터 센터 운영이 목적이 아니라, 대학과 의료·연구 기관 등의 주문일 경우 첨단 GPU 약 1,700개 성능까지는 미국산 칩 구매 허가 절차를 면제하기로 했다.

10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연설 중인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워싱턴=AP 연합뉴스

강력한 AI 시스템이 악의를 가진 국가나 행위자의 수중에 들어가면 대량살상무기 개발, 사이버 테러, 감시 등 인권 침해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게 백악관 우려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새 규칙은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는 동시에 안보 위험에 대응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은 “이번 규제가 혁신이나 미국의 기술 리더십을 저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산업 성장만 더디게 할 공산이 큰 규제인 데다, 막대한 여파를 낳을 게 뻔한 정책을 일주일 후 퇴임하는 바이든 대통령이 결정해도 되느냐는 불만이다. 이에 미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전날 사전 브리핑에서 “현재 미국 AI 기술은 중국보다 6~18개월 앞서 있을 뿐”이라며 규제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러몬도 장관은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수정할 수 있도록 이번 조치 시행까지 120일간의 여론 수렴 기간을 설정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권경성 특파원 ficciones@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