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감태 싹 죽어신디 소라가 살아지카"… 기후변화에 바다 떠나는 해녀·어부들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감태가 다 썩어불고 하나도 어서, 경 헌디 전복이영 소라영 살아지크라(감태가 다 썩어버려 하나도 없는데 전복이랑 소라가 살 수 있겠나)?"
대한민국 최남단, 제주 서귀포. 김계숙(72) 동일리 어촌계장 겸 전국해녀협회장이 기억하는 최초의 바다는 지상의 숲 못지않게 우거진 풍요로움 그 자체였다.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바다가 놀이터였던 그는 자연스레 열여덟 살 때 물질을 업으로 삼게 됐다. 넉넉한 바다엔 소라와 해삼이 넘쳐났고, 운이 좋으면 한숨에 비싼 전복을 세 개씩 건질 때도 있었다. 변함없이 내어주는 바다 덕에 한 달에 4, 5번 물질로도 살림을 꾸리고 아이들을 거뜬히 키워낼 수 있었다.
해녀들에게 삶의 터전인 바다가 바뀌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15년까지도 하루 200~300㎏ 잡히던 소라가 점점 보기 힘들어지더니, 지난해부턴 어획량이 3분의 1 아래로 떨어졌다. 금채기간이 끝나고 지난달 11일 오랜만에 물질에 나선 김 회장이 5시간 가까이 물질해 잡아올린 소라는 60㎏ 정도에 불과했다. 그나마 김 회장은 54년간 해녀로 살아온 '베테랑'이다. 다른 해녀들은 30㎏ 수준이었지만 "이것도 감지덕지, 10㎏도 안될 때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서귀포시 대정읍 해녀탈의장에서 만난 동일리 어촌계 해녀들은 이 같은 변화의 원인으로 감태, 미역 등 갈조류가 자취를 감춘 점을 꼽았다. 해남 홍창남(59)씨는 "수온이 높아져 감태, 톳, 모자반 등 풀이라곤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며 "전복, 소라도 먹을 게 있어야 살 건데"라고 한탄했다. 동일리 최고령 해녀인 곽순선(76)씨도 "옛날엔 (미역 등) 키가 커서 몸에 얽힐 것을 걱정할 정도였다"며 "좋아지긴커녕 더 나빠질 일만 남은 것 아니냐"며 한숨을 쉬었다.
생태계 근간인 갈조류 숲이 사라진 제주 바다는 갯녹음(백화) 현상에 사막화하고 있다. 제주해양수산연구원의 '제주 마을어장 해조류 분포조사'를 보면 지난해 생체량 상위 20종 중 석회조류 등 홍조류가 70%, 갈조류는 25%, 녹조류는 5%를 차지했다. 어류도 다금바리, 붉바리 등은 줄고 호박돔, 아홉동가리, 잿방어 등 아열대어종을 넘어 독가시치 등 열대어종이 늘고 있다. 이에 더해 독이 있는 긴가시성게와 해파리가 많아지고 상어가 출현하는 일도 잦아졌다.
생태계를 지키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제주도는 지난해 상반기 43개소 어촌계에 홍해삼 62만 마리, 전복 51만 마리, 오분자기 24만 마리 등 수산종자를 대량 방류했으나 기후변화 속도가 더 빨라 정책적 효용이 낮다. 김 회장은 "방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죽었는지, 떠났는지 안 보인다"며 "물이 차가워야 나오는 해삼은 구경도 못 했다"고 말했다. 4~9월 6개월 금채기간을 두고, 7㎝ 이하 소라 등 어린 개체는 놓아주고 있지만 나날이 개체수 감소가 체감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새로 들어오는 이는 드물고, 고령화와 더불어 그만두는 해녀들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동일리 어촌계 막내 이은영(47)씨는 경기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법환해녀학교를 졸업, 어촌계에 합류한 지 4개월 차다. 소라 1㎏ 도매 입찰가는 3,600원, 이씨가 한 달 물질로 손에 쥔 돈은 11만3,000원이다. 선배들은 "4, 5년은 해야 요령이 생긴다"고 다독이면서도 "전엔 물량이라도 많았는데, 수입이 변변치 않다보니 우리도 수시로 그만두려는 마음이 든다"고 털어놨다.
다른 어촌계도 마찬가지다. 법환어촌계 5년 차 해녀 신민희(42)씨는 "기억하기론 2023년 선배들도 '50년 물질하는 동안 미역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이라고 할 정도로 정점을 찍었는데, 이듬해부터 하나도 안 나더라"며 "지난해엔 전복을 떼도 병에 걸린 것처럼 다 죽어있었다"고 회상했다. 물질 실력이 비교적 낮던 당시 신씨 어획량은 150㎏이었지만 최근에는 반토막 났다. 그는 "(기후 위기가) 언젠가 올 거라 생각했지만 제 세대에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신씨는 생활을 영위하려 직접 잡은 해산물로 남편과 식당을 운영한다. 그는 "아마 해녀를 본업으로 하는 젊은이는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밤에 대리운전을 뛰는 동생도 있다"고 귀띔했다. 1970년 1만4,143명에 달했던 제주 해녀는 2023년 2,839명으로 처음 3,000명 선이 붕괴됐다. 고승철 법환해녀학교장은 "지금 나잠업, 어선업을 하는 청년들이 먹고살 수 있겠나, 정착금으로 될 일이 아니다"라고 짚었다. 해녀학교 한 기수 졸업생 35명 중 업으로 삼는 이는 10명 남짓이다.
제주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일보는 한 달여에 걸쳐 해녀·어부·양식업자 등 어업인 15명과 대면·유선 인터뷰를 진행했다. 강원 양양, 경북 울진, 전남 완도 등 어업인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 감소 △상품성 하락 △기존 어종 어획 불가 현상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었다. 가장 큰 원인으론 수온 상승이 지목된다. 한국 연근해 표층 수온은 2023년까지 56년간 약 1.44도 올랐는데, 세계 평균의 2배 이상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2100년대까지 꾸준히 오를 것으로 예측한다.
강원도엔 한류성 어종인 명태가 씨가 마르고, 제주에서 북상한 난류성 어종 방어가 급증했다. 어민 후계자인 권영환(60) 강원도자율관리어업연합회장은 이 현실이 더욱 씁쓸하다. 부모님대까지만 해도 동해는 '국민 생선'인 명태 주산지였다. 명태 어획량은 1981년 16만5,800톤을 정점으로 2000년 1,000톤 이하로 급감했다. 새끼인 노가리 남획에 수온 상승이 겹치면서 생존이 어려워져 2008년엔 어획량 '0톤'을 기록했다. 정부는 2019년 뒤늦게 명태 포획을 전면 금지했다.
권 회장은 2014년 해양수산부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에 참여, 수년간 인공종자를 생산해 치어를 방류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 한두 마리가 그물에 걸릴 뿐, 오호츠크해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강원 고성은 지난해 명태 없는 '명태 축제'를 열어야 했다. 권 회장은 "국내에 유통되는 명태 99%가 러시아산"이라며 "수입에 의존하는 어종이 많아질수록 자급률은 떨어져 국민 먹거리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명태뿐 아니라, 오징어와 도루묵 등 다른 대표 어종들도 동해를 떠나고 있다. 강원도가 집계한 '2024년 어획실적 누계'에서 지난해 오징어, 도루묵 어획량은 최근 3년 평균 대비 각 23%, 28%에 불과했다. 그 탓에 두 어종 모두 수산시장 경락시세가 전년 대비 2, 3배 널뛰었다. 권 회장은 사라져가는 어종들 대신 문어, 광어, 가자미 등을 취급하고 있다. 그는 "방어, 참치가 늘었다지만 비교적 규모가 큰 정치망 어업으로 이뤄져 영세어민들이 접근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경북 울진에서 35년째 어선업에 종사해온 이태근(61)씨도 원래 오징어잡이배를 띄웠지만 5년 전 어종을 곰치, 가자미 등으로 바꿨다. 이씨는 "오징어는 하도 안 잡혀 포기했고, 배 한 척에 100㎏ 이상 잡히던 도루묵도 지난해 4, 5㎏밖에 안 잡혀 거의 멸종된 수준"이라고 전했다. 설상가상 기후변화로 태풍과 호우가 잦아져 조업일수에도 영향을 받고 있다. 그는 "3, 4년 뒤 이 일을 안 하려고 한다"며 "차라리 막일을 하는 편이 수입이 좋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어업 형태를 가리지 않고 어민들의 낙담은 깊어지고 있다. 전남 완도에서 전복 양식업을 하는 김영승(36)씨는 지난해 10월 고수온 현상에 미역이 피해를 입으면서 2억 원 상당의 타격을 받았다. 전복은 고수온기 장기간 절식하는 습성이 있는데, 제때 먹이를 주지 못해 품질이 하락한 것이다. 경북 울진에서 나잠업을 하는 다이버 박경호(50)씨 또한 바닷속 해삼, 멍게 폐사로 재작년부터 매출이 반은 깎였다. 두 어민 모두 "기후변화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망연자실했다.
해수부는 기후변화가 지금 추세로 유지되면 전체 수산물 생산량이 연 368만 톤에서 2050년 317만 톤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어가 18%(7,800여 가구)가 소멸할 것으로 우려된다. 기우에 그치면 좋겠지만,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 문제다. 연근해 어획량은 1980년대 평균 연 151만 톤 수준에서 2023년 96만 톤으로 꾸준히 감소해왔다. 2020년 10만 명 아래로 떨어진 어가인구는 2023년엔 8만7,115명으로 전년보다 4.1%(3,690명) 줄었다.
기후변화로 대중 어종과 함께 어업인들 또한 우리 바다를 떠나는 실정이다. 우선 일부 어종의 물가 불안은 수입으로 대체하거나 정부 재정을 투입해 미봉책으로나마 대응하고 있지만, 수산물을 생산하는 어업인 자체가 급감하는 점이 밥상의 위기를 더 앞당길 수 있단 지적이 나온다. 남재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특임교수는 "이미 농림어가에서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는데, 지금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향후 식량 수급 불안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