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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없는 신년음악회... 박수 없이도 감동은 컸다

입력
2025.01.12 14:00
20면

[이지영의 클래식 노트]

편집자주

20여 년간 공연 기획과 음악에 대한 글쓰기를 해 온 이지영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이 클래식 음악 무대 옆에서의 경험과 무대 밑에서 느꼈던 감정을 독자 여러분에게 친구처럼 편안하게 전합니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아레테 콰르텟이 9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를 위한 십자가 위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연주하고 있다. 금호문화재단 제공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아레테 콰르텟이 9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를 위한 십자가 위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연주하고 있다. 금호문화재단 제공

신년음악회가 한창이다.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는 나치 정권의 선전 도구로 기획된 어두운 과거가 있지만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행사로 자리를 잡게 됐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춤곡과 행진곡은 큰 인기를 얻게 됐고 '봄의 소리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라데츠키 행진곡' 등은 신년을 상징하는 레퍼토리가 됐다.

올해 국내에서 열린 신년음악회는 본 공연보다 앙코르 프로그램 선곡이 눈에 띄었다. 비록 짧은 곡이지만 앙코르는 좀 더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스킨십을 갖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올해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인해 '추모'의 의미를 담은 소품들이 공연 전후에 연주되었다. 밝고 유쾌한 분위기는 자제하는 한편, 동시에 새 출발을 응원할 수 있는 앙코르 프로그램 선곡에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서양음악의 추모와 애도라면 우선 장송행진곡의 무거운 멜로디를 떠올리게 된다. 하이든, 베토벤, 멘델스존, 리스트, 쇼팽, 구노, R.슈트라우스, 리히터, 힌데미트 등 많은 작곡가가 죽음을 이야기하는 음악으로서 장송행진곡을 써 왔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레퀴엠은 미사곡으로 구체적인 가사가 담긴 작품이다. 올해 신년음악회에서는 죽음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추모를 위한 자리에서 자주 연주되었던 곡들이 눈에 띄었다.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중 '님로드'나 루스벨트,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는 추모를 목적으로 쓴 곡은 아니나 자주 연주되는 곡이다.

말러가 부인 알마에게 보냈던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는 실은 작곡가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전한 일종의 '연애편지'였다. 이 작품은 1971년 루치노 비스콘티 감독의 영화 '베니스에서 죽다'에서 죽음의 장면에 등장하면서 추모를 위한 자리에서 자주 연주되었다. 2009년 금호문화재단 초청으로 내한한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2005년에 세상을 떠난 고(故) 박성용 금호문화재단 명예회장을 애도하기 위해 '아다지에토'를 연주했다. 현악과 하프의 섬세하면서도 고요한 진행이 아름다운 이 곡은, 평생 음악을 사랑하고 한국 음악 발전에 크게 기여했던 인물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마음이 커지면서 각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음악이 멈춘 순간 이어지는 간절한 심정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향 신년음악회에서 본 공연에 앞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음악감독이 1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서울시향 신년음악회에서 본 공연에 앞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서울시향 제공

때로는 앙코르를 하지 않음으로써 더 큰 감동을 이어갈 수 있다. 2025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활동하게 된 아레테 콰르텟은 지난 9일 첫 무대에서 하이든의 '현악 사중주를 위한 십자가 위 예수의 마지막 일곱 말씀'을 연주했다.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 절망과 슬픔, 용서와 사랑, 평온, 침묵, 그리고 예수의 죽음을 묘사한 이 작품은 느리고 진중한 9개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주시간은 60분.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구성이지만 정교함을 쌓아 올린 이날의 무대는 앙코르 없이 끝이 났다. 앙코르 없는 무대는 신선했다. 묵직한 서사, 이것을 읊어낸 꽉 찬 음악,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선언하는 듯했다.

앙코르는 물론 박수를 치지 않음으로써 음악의 의미를 이어가기도 한다. '수난곡'이나 '레퀴엠'은 예배를 위한 곡으로 음악이 끝난 후에도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성당이나 교회를 떠난 공연장에서의 연주는 종교곡이 아닌, 음악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해 박수를 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과 죽은 자를 위한 진혼으로서의 미사는 침묵을 이어갈 때 엄숙함과 함께 음악의 감동과 의미가 더해진다.

2010년 8월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말러 교향곡 9번을 지휘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연주는 음악 감상에 있어서 침묵과 고요의 힘과 의미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게 하는 기록이다. '죽음과 이별의 교향곡'이라는 별명을 가진 말러 9번은 엄숙하면서도 어둡고 느린 템포에서 시작해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의 처절하면서도 간절한 심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악장, 마지막 음이 소멸된 후에도 지휘자는 물론 연주자, 그리고 관객들까지 침묵 가운데 멈춰 있었다. 공연 현장을 담은 영상을 보면 아바도는 음악이 멈춘 그 순간에도 음악을 듣고 있는 듯 보인다. 음악도, 박수도 없었던 2분여의 시간 동안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죽음과 이별이라는 현실의 암울함이 아닌 사랑과 소망이라는 천상의 맑음을 들었던 것이 아닐까.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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