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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라면 안 먹어도 돼 감사" 방학에도 따뜻한 점심 '500원 식당'

입력
2025.01.12 20:0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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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때마다 학생에게 500원만 받고 점심 제공
한때 중단 위기, 이웃들 후원으로 극복
"공간 등 문제로 하루 49명 제한 안타까워"

지난 2022년부터 방학 동안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점심을 제공하는 경남 창원시 '500원 식당'. 창원= 박은경 기자

지난 2022년부터 방학 동안 학생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점심을 제공하는 경남 창원시 '500원 식당'. 창원= 박은경 기자

“이런 식당이 더 많으면 좋겠어요.”

지난 7일 점심시간, 경남 창원시 블라썸커뮤티니센터 1층 식당 문이 열리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방문명부에 이름을 쓴 꼬마 손님들은 돼지저금통에 500원을 넣은 뒤 차례차례 자리에 앉았다. 30여 명이 한 번에 앉을 수 있는 홀은 5분도 안돼 가득 찼다. 이날 메뉴는 치즈와 계란을 올린 함박스테이크에 양송이 수프, 양배추 샐러드, 감자튀김, 김치. 아이들은 금세 식판을 깨끗하게 비우고는 주방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쌍따봉’을 날렸다. 고사리 같은 손에 초콜릿과 간식을 들고 와 "감사하다"며 건네는 아이도 있었다. 이틀째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 송승민(11)군은 “어젠 400원밖에 없어서 오늘 600원을 냈다”며 “부모님이 일하고 계셔서 방학 땐 아침에 점심밥을 차려 놓고 출근하시거나 친척집에 부탁하셨는데, 이젠 내 용돈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 좋다”며 뿌듯해했다.

지난 7일 겨울방학을 맞아 이틀째 문을 연 500원 식당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창원= 박은경 기자

지난 7일 겨울방학을 맞아 이틀째 문을 연 500원 식당이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창원= 박은경 기자


지난 7일 500원 식당에서 제공한 함박스테이크.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지난 7일 500원 식당에서 제공한 함박스테이크.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은 2022년부터 방학 때마다 아이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학교 급식이 나오지 않는 기간 삼각김밥, 컵라면 등으로 점심을 때우는 동네 아이들에게 ‘든든한 밥 한 끼 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행여 공짜라고 눈칫밥을 먹을까 500원만 받고, 받은 금액은 모두 기부한다. 손님 대부분은 혼자 밥을 챙겨 먹기 어려운 초등학생이지만, 학원 등 일과에 쫓기는 고등학생도 많다. 올해 고3이 되는 최영찬(18)군은 “학원, 독서실 등을 다니면서 중간에 밥을 먹어야 하는데 집까지 다녀오려면 1시간 이상 걸린다”며 “일주일에 3, 4번은 편의점 컵라면으로 때우다, 단돈 500원에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초등생 자녀 두 명과 식당을 찾은 최은정(41)씨는 “저렴하고 푸짐하고 맛있다”며 “맞벌이 가정에 꼭 필요한 곳인데, 집에서 차를 타고 와야 하는 거리라 아이들만 보내긴 힘들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500원 식당은 예산이 없어 지난겨울 방학 때는 중단 위기에 놓이기도 했으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지역 기업들과 개인 기부자들의 후원으로 되살아났다. 서빙이나 설거지, 식재료 손질은 인근 학부모 등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영순 조합 이사장은 “일부러 와서 1,000원을 내고 가는 아이도 있고, 지나는 길에 쓰레기봉투나 참치캔을 넣어주는 이웃들도 많다”며 “오늘 점심도 제주에 사는 후원자가 보내 준 귤, 이웃 진해여고에서 직접 배추를 키워 담근 김치로 훨씬 풍성한 밥상이 됐다”고 자랑했다.

지난 7일 이영순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식당 앞으로 배달 온 쌀과 과일 등 후원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창원= 박은경 기자

지난 7일 이영순 블라썸여좌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식당 앞으로 배달 온 쌀과 과일 등 후원물품을 살펴보고 있다. 창원= 박은경 기자

이번 겨울 방학에는 다음 달 21일까지 매주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전 11~오후 1시 문을 열 계획이다. 아동·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다만 하루 이용객은 49명으로 제한된다. 식수 인원 50명 이상은 집단급식소로 분류돼 식품위생법에 따라 관리·감독을 받고 조리사, 영양사 등 자격을 갖춘 전문 인력도 채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사장은 “정원을 초과해서 밥 먹으러 온 아이를 어쩔 수 없이 돌려보낸 적도 있었다”며 “식당 공간이 좁고 전문 인력을 채용할 형편도 되지 않아 운영을 확대하지는 못해 안타깝다”고 말했다.

창원= 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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