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불법 계엄'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
비상시국에 갈등 증폭 몰두하는 정치권
사임으로 국민 통합 이뤄낸 닉슨 따라야
'12·3 계엄'은 말이 계엄이지 실상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였다. 세계 헌정사에 보기 드문 이런 사태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정말 믿기지가 않는다. '윤석열의 난(亂)'이라고 부를 만한 이 같은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지가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도 사태 수습이 아직도 되지 않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계엄 사태로 초래된 비상시국을 맞아 여권은 물론이고 야권도 국가와 국민보다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有不利)를 중시하는 것 같아서 심히 우려된다. 12·3 사태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잘 보여 줬다. 국방장관을 위시한 몇몇 군 지휘관들이 병적인 대통령과 한통속이 돼 엄청나고 어처구니없는 일을 꾸몄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다. 쿠데타를 도모한 혐의로 국방장관과 군 고위지휘관 및 경찰 수뇌부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인 대통령은 경호처 비호 아래서 관저에 숨어 있으니 가히 초현실적이다.
12·3 계엄이 '실패한 내란'으로 귀결된 후에도 혹시 있을 수 있는 위험을 저지하기 위해 국회가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를 신속하게 결의한 조치는 정당할뿐더러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친위 쿠데타 시도에 가담한 군과 경찰의 고위직을 신속하게 체포해 사법절차에 넘김에 따라 사태는 진정되는 듯했으나, 윤석열에 대한 사법처리를 둘러싸고 갈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12·3 사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고 또 사법부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았던 사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것임에도 국민의힘 국회의원 대다수가 대통령 탄핵과 구속을 반대하고 있으니 이해하기 곤란하다.
'윤석열의 난(亂)'을 조기에 진압하는 데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역할이 결정적이었고, 사태 후 정국 주도권은 국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 후 민주당의 행보는 선(線)을 넘는 것 같아서 역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도 거치지 않고 제멋대로 계엄을 선포했기 때문에 국방장관을 제외한 대부분 국무위원들은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당황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제외하고는 소신껏 계엄에 반대한 장관은 별로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엄에 반대하지 않은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나칠뿐더러 사태 수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당 의원들이 누구누구는 탄핵을 하겠다는 식으로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강경 발언도 상황 수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쪽의 입장을 들어본다는 명분으로 양쪽에서 늘어놓는 주장과 변명을 그대로 내보내는 방송의 시사프로도 대립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이처럼 우리 정치는 상호 비방을 통해 자기 세력을 강화하는 데만 주력하고 있으니 과연 정치라는 기능이 있기나 한지 알 수 없다.
1974년 여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하원 법사위원회가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를 의결하자 스스로 사임, 미국이 워터게이트로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정상의 길을 가도록 했다. 닉슨은 사법 방해와 권력남용 혐의로 탄핵에 회부됐는데, 미 중앙정보국(CIA)으로 하여금 워터게이트 수사를 저지하도록 지시했음이 밝혀진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CIA 국장은 닉슨의 지시에 응하지도 않았으나 그런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였다. 닉슨의 탄핵이 불가피함을 알게 된 공화당 원로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은 닉슨에게 "미국과 공화당을 위해 사임하라"고 권했고 이에 닉슨은 사임했다. 세상이 그렇게 정상이었던 시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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