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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의 공항이 될 줄이야"… '죽은 자와 산 자의 공간' 무안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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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억, 꺼억…"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엿새째인 3일 오전 6시쯤. 새벽 어스름 속에 환하게 드러나 있는 전남 무안국제공항 여객청사에선 숨죽인 흐느낌 소리가 흘러나왔다. 2층 대합실 계단 난간 쪽 의자에 두 발을 올린 채 웅크리고 앉아 있던 유족의 목소리였다. 신음 같은 울음은 한동안 끊겼다가 이어지길 반복한 후 가라앉았다.
"잠 좀 주무셨어요?" 낯선 이(기자)의 낯선 말에 유족은 두 무릎 사이에 파묻었던 고개를 힘겹게 들어올렸다. 퀭한 두 눈은 짓물러 있었다. "길고 긴 밤이었어요." 그녀의 대답엔 물기가 가득했다. 비명에 간 남동생 생각에 밤새 잠 한숨 못 잤다는 얘기였다. "더는 묻지 마세요. (1층 합동 분양소로) 동생 보러 갈 겁니다." 이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의 어깨는 또다시 가늘게 흔들렸다.
유족 임시 숙소(텐트)가 벌집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무안공항 대합실은 '죽은 자와 산 자의 공간'이었다. 이곳을 휘감은 공기는 여전히 무거웠다. 죽은 자를 그리는 산 자와 그 산 자를 위로하는 또다른 산 자들의 눈물을 머금은 탓이었다. 유족은 애써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비통함을 가누지 못한 건 어쩔수 없었다.
"간신히 정신 줄을 붙잡고 있는 게 안 보이요!"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1층 대합실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 앞. 성도 이름도 묻지 말라던 70대 유족은 감정의 기복을 드러냈다. 그는 "아들을 잃은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해야 하냐"고 목에 핏대를 드러내더니 금세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라고 연방 고개를 숙였다. 넋이 반쯤은 나가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 아닙(니다)..."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전에 그는 등을 돌려 피난처 같은 숙소로 향했다. 그가 떠난 자리엔 묵직한 향내만 남았다.
생지옥 같은 참사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 유족의 상처는 트라우마 그 자체였다. '시신편(片).' 난생 들어본 적 없는 단어 앞에 그들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이날 "기체 잔해인 꼬리 칸을 들어올려 그 밑에 깔렸을지 모를 시신 수습에 나선다"는 수습 당국의 발표에 유족은 또 가슴을 쥐어짰다. "삼촌의 신체 일부만 찾았다"는 한 유족은 "참사 당시 삼촌이 느꼈을 공포와 고통이 그대로 느껴져 괴롭다"고 했다.
유족의 절규는 관계 당국을 흔들어 깨웠다. 보건복지부는 참사 초기 유족을 상대로 재난 심리 상담을 시작한 데 이어 2일부터는 정신과 전문의까지 배치해 진료에 나섰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 심리 전문 요원 등을 투입했고, 전남도는 유족을 위한 수액실까지 마련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심리 상담실을 찾은 유족 대부분이 수면 부족과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고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심리 상담 요원은 "유족이 겉보기엔 평온을 유지하는 듯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엔 슬픔과 분노가 교차하고 있다"며 "상담 중 울다 지쳐 쓰러진 유족이 한둘이 아니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공항 곳곳에서 터져 나온 유족의 흐느낌은 이내 또다른 유족의 감정선을 건드리며 통곡으로 변했고, 산 자의 마음까지 찢어 놓았다. 추모객 이진석(55)씨는 "제단에 이마를 비비며 통곡하던 유족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찢어지듯 아렸다"고 울먹였다. 실제 분향소에서부터 흘러나오던 유족의 울부짖음은 향내를 타고 간단없이 공항 곳곳으로 번졌다. 그래서일까. 추모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추모 글을 살펴보던 추모객 박진수(43)씨는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내뱉듯 말했다. "차라리 고추나 계속 말리지. '통곡의 공항'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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