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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하게’가 아프고 절절한 새해 인사

입력
2025.01.05 22:00
26면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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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해의 마지막 주말을 온 가족이 함께 보내기로 한 건 너 나 할 것 없이 우울해서였다. 안팎으로 너무 버거운 한 해였다. 속마음 잘 아는 가족끼리라도 모여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한 해가 넘어가면 다시 또 자욱한 안개를 헤쳐나가듯 불안한 표정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 우리였다. 각자 흩어져 해넘이를 하는 것보다는 그편이 따스하고 행복할 성싶었다.

큰 병과 수술을 이겨낸 이들, 곧 생일을 맞이할 이들에게 줄 꽃과 선물을 샀다. 늙은 부모와 꼬마 가족들에게 안길 스웨터며, 목도리도 장만했다.

토요일 저녁, 함께 식사를 마친 우리는 커다란 거실에 모여 해넘이 의식을 시작했다. 음력 섣달에 생일을 맞이하는 가족 세 명을 위해 케이크에 촛불 세 개를 밝혔다. 빙 둘러서서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 부르고 각자 준비한 선물을 안기는 것만으로 마음은 가볍게 일렁였다. 그다음은 큰 병과 수술을 이겨낸 가족 세 명을 격려하고 쾌유를 축하할 차례였다.

91세 나이에 급성 장폐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뒤 그 길로 소장 75cm를 자르는 수술을 받고 당당히 살아 돌아온 울 아버지, 보름 사이 두 번이나 수술대에 오르면서도 '모든 일에는 그만의 이유와 뜻이 있을 것'이라며 의연하던 내 동생, 목뼈 속 깊은 곳에 숨겨진 탁구공 크기 종양을 제거하기 위해 여덟 시간 동안 대수술을 받아야 했던 작은언니. 가족들에게 둘러싸인 세 명이 모처럼 활짝 웃었다. 수술 후 나흘간 중환자실에 머물며 섬망에 빠졌던 아버지의 이야기도, 사실은 온몸이 오들오들 떨릴 만큼 외로워서 차라리 대기실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만 싶었다던 동생의 고백도, 자기는 한숨 푹 자고 나온 줄 알았는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남편과 딸애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있더라는 작은언니의 너털웃음도 다 지나간 후일담이라는 사실이 기적 같았다.

남자들과 아이들이 차례차례 방으로 자러 들어간 뒤에도 우리 형제와 엄마는 거실에 요를 깔고 누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물고물 팔 남매가 함께 자라던 오래전 이야기, 죽거나 떠난 동네 사람들 이야기, 어수선한 시국 이야기···. 새벽까지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도중 우리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말은 "참 고마운 일이야" "그러니까 아프지 말자" "그저 세상이 무탈하게만 돌아갔으면" 같은 흔한 추임새였다.

그 소박한 바람조차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잔인하게 목도하는 데는 다섯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허억! 이걸 어째!" 다음 날 아침, 식탁에 둘러앉아 늦은 아침을 먹고 있는데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조카가 신음 같은 말을 내뱉으며 TV를 켰다. 비행기 사고 장면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웃으며 식사하던 우리는 한동안 아무말도 못 한 채 얼어붙었다. 이 큰 아픔을 또 어찌 감당할까.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는 자식들을 차례차례 배웅하던 엄마는 끝내 눈물을 훔쳤다. "조심해서 가거라. 너무 힘들어들 하지 말고, 새해에는 다들 무탈하거라."

목구멍에 걸린 가시 같은 슬픔을 껴안고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일터에서 거리에서 새해를 맞으며, 죽을힘을 다해 서로를 다독이고 격려한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자고. 꿋꿋하고 강건하게 이겨내자고. 조금 더 견디다 보면 봄이 오지 않겠느냐고.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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